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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정치의 ‘풀빵 정신’



청년 전태일은 함께 일하는 봉제공장 여공 시다(보조원)들이 점심을 굶고 일을 하는 걸 보면 자신의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곤 했다. 그런 뒤 본인은 서울 청계천 공장에서 창동 집까지 두세 시간 거리 밤길을 걸어서 갔다. 본인도 어려웠지만 점심을 굶을 정도로 가난한 여공들을 위해 자신의 것을 내준 것이다. 그걸 노동계에선 ‘풀빵 정신’이라 부른다. 나보다 더 힘이 없는 이를 먼저 챙기려는 노동운동 정신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지난 5일 세종·충북 대선 경선 연설회에서 이 풀빵 정신이 거론됐다. 후보인 박용진 의원은 최근 택배 대리점주의 극단적 선택을 언급하며 “민주노총이 또 다른 약자 위에 군림하는 세력이 됐나 싶어 가슴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계가 전태일의 풀빵 정신으로 돌아가 대공장·정규직·고임금 노동자만이 아니라 노조조차 없는 90%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운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의원은 요즘 경선 연설회나 TV토론 때마다 노동계를 비판하며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또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통합을 비롯한 미래세대를 위한 연금개혁도 부르짖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통한 무능한 교원 퇴출 등의 교육개혁도 단골 메뉴다. 하나같이 박 의원을 찍을 만한 이들의 표를 깎아먹는 제안들이다. 실제 박 의원은 충청 지역 경선 뒤 블로그에 “요즘 표에 도움 안 되는 연설을 왜 하냐고 우려하는 얘길 많이 듣고 있다”고 적었다. 이어 “하지만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필요한 과제들을 계속 말씀드리려 한다. 그게 미래를 준비하는 리더의 자세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정치권에 ‘표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정치인들이 표를 위해서라면 간도 쓸개도 다 빼준다는 말이다. 선거철이면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데도 박 의원이 표 날아가는 말만 끈질기게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말리고 있는 것일 테다. 하지만 그 사회 미래를 위한 방향을 제시하고, 욕 먹고 불이익을 당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꿋꿋이 외치는 게 이 시대 정치인들에게 꼭 필요한 풀빵 정신이 아닐까.

손병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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