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언제부터인가 매번 ‘유례없는’ 더위와 추위를 보내게 됐다. 이번 여름도 ‘이변 없이’ 천년만의 기후재앙을 경험하며 녹아내리는 남극을 보아야 했다. 환경문제는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고 ‘너’와 ‘나’도 따로 없다. 당장에 ‘내’가 열돔으로 잠을 못 자고, ‘내’ 이웃이 홍수로 생명을 잃고, 산불이 ‘내’ 집 앞마당까지 다가오고, 폭설로 ‘내’ 집의 전기가 끊긴다. 한 해 한 해 거듭될수록 환경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다. 우리 자손의 미래를 빌려 쓰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미래의 문턱에 들어설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든다.

자연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만은, 인간을 자연 위에 놓고 자연을 도구화하는 데 주저하지 않게 했다. 이러한 인간의 오만은 또한 창세기 1장 28절의 지지를 받은 면도 없지 않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후에,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5일간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여섯째 날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으로 인간은 스스로를 만물 위에 놓았을 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유아독존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자연을 만든 후 인간을 창조했다고 해서 인간이 자연보다 우월하다 할 수 있는가.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이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하라는 뜻인가. 그렇지는 않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우월성을 나타내기보다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인간의 의존성을 보여준다. 인간이 맨 나중에 창조된 것은 인간이 제일 잘나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여섯째 날 창조되었기에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먼저 창조된 자연이 인간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환경이 없다면 인간은 살 수 없다. 하나님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5일 동안 만드셨고, 그 안에 남자와 여자가 자연과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은 자연을 인간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함께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령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남자와 여자, 그리고 자연이 모두 함께 이 땅에서 생명을 뿜어내라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다. 남자와 여자, 자연이 모두 힘을 합해야 각각의 생명이 보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은 벌의 개체 수가 해마다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으며 벌의 멸종이 인류의 멸종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기껏 벌인데! 벌과 인간은 이렇게 서로 생명을 주고받고 있다. 우리는 이렇듯 하나님의 생명 공동체 안에 있다. 창세기 1장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 여기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우열관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이 파괴되면, 인간의 생명이 보존될 수 없다.

오늘날 우주에 관한 관심이 집중되고 확산되는 상황에서도 인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행성은 지구가 유일하다. 아직은 오직 지구에서만 우리가 편하게 숨을 쉬며 살 수 있다. 지구를 지키는 것이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것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연을 보호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자연이 살아야 인간이 산다. 자연의 생명 안에 인간의 생명이 있다. 6일 동안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이 만든 창조물이 함께 살아가야 할 필연과 당위를 알려준다. 남극의 눈물을 보아야 하는 지금, 불타는 지구의 신음을 들어야 하는 지금이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할 때다. 하나님이 만든 생명이 죽음의 길에 이르지 않도록 다시금 하나님의 생명을 기억할 때다.

김호경 서울장로회신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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