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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혜 특파원의 여기는 베이징] 美 보란 듯 밀착하는 中·탈레반… 왕서방의 2중포석

왕이(오른쪽)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탈레반 2인자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지난 28일(현지시간) 중국 톈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신화AFP연합뉴스




중국과 국경을 접한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바다크샨의 좁고 긴 와칸 회랑 일대는 이슬람 무장 조직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다. 2017년까지만 해도 아프간 정부군이 통제하던 지역이다. 바다크샨의 전략 요충지인 와칸 회랑이 탈레반에 넘어간 뒤 처음으로 탈레반 지도부가 중국을 방문한 건 양측 밀월 관계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꼽힌다.

미군 철수로 아프간 정세가 요동치는 사이 중국과 탈레반이 밀착하고 있다. 탈레반을 통해 신장의 테러 활동을 차단하려는 중국과 중국을 등에 업고 아프간 재건 과정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탈레반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달 초·중순 중국에서 대규모 연합훈련을 실시한다. 미국에 대항한 중·러의 군사 협력 강화 역시 아프간 정세 변화와 직결돼 있다.

中외교부장과 탈레반 2인자의 만남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 28일 톈진에서 탈레반 공동 창립자인 압둘 가니 바라다르가 이끄는 대표단을 만났다. 1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 부장은 “탈레반은 아프간의 중요한 군사적 정치적 역량”이라며 “아프간 평화와 재건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왕 부장은 특히 신장위구르자치구를 근거지로 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을 콕 찍어 “중국의 국가 안보와 영토 보전에 직접적 위협이 된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탈레반이 ETIM 등 모든 테러 단체와 선을 긋고 지역 안전에 역할을 발휘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ETIM은 1990년대 초 중국 내 소수민족인 위구르족의 분리·독립을 위해 조직된 무슬림 단체다. 중국은 ETIM 활동을 빌미로 신장 위구르족에 대한 통제와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의 신장 정책을 ‘집단 학살’로 규정하고 비판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바라다르는 “탈레반은 아프간의 어떠한 세력도 아프간의 영토를 이용해 중국에 해를 끼치는 일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어 “중국이 아프간 평화 재건 과정에 더 많이 참여해 향후 경제발전에 더 큰 역할을 하기 바란다”며 “탈레반도 적절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중국과 탈레반 양측 모두 각자의 관심사와 요구사항을 분명하게 전달하고 답변을 받아낸 셈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양측 만남을 두고 “정권을 잡느냐 마느냐와 무관하게 탈레반은 아프간 정치와 안보에 영향을 끼치는 핵심 세력”이라며 “탈레반은 아프간의 다른 테러 조직을 억제할 수 있고 탈레반의 이러한 역량은 중국 안보에 유용하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가 지난달 말 공개한 지도를 보면 탈레반은 현재 아프간 북동부와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에 강력한 병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에 더해 아프간과 파키스탄 국경의 남동부 마을인 스핀 볼닥을 포함한 국경 요충지까지 장악한 상태다. 탈레반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미군 침공으로 정권을 잃었지만 외곽에서 힘을 키워 세력을 확대해왔다. 미군이 내달 11일까지 아프간 철군을 완료하겠다고 선언한 이후 탈레반의 진격은 눈에 띄게 대담해졌다. 지금은 아프간 영토의 절반 이상을 장악한 것으로 평가된다.

탈레반은 농촌에서 소도시로, 다시 도심으로 진출하면서 정부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다. 이로 인해 민간인 사상자가 속출하고 도심 탈출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미 정보당국이 미군 철수 후 6개월 안에 아프간 정부가 붕괴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중국은 이러한 정세 불안을 미국의 아프간 정책 실패 탓으로 돌리면서 내정 불간섭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탈레반을 이용해 중국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하는 모습이다.

중·러 합동훈련 키워드도‘아프간 대응’

중국과 러시아는 이달 중국 닝샤후이주자치구 칭퉁샤 전술훈련기지에서 ‘서부연합-2021’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번 훈련에는 중국군 서부전구, 러시아 동부군구에서 총 1만여명의 병력이 참가하고 양국 국방장관이 참관한다. 양국 군은 합동지휘본부를 설치해 공동 정찰 및 조기경보 역량 등을 테스트할 방침이다. 중국 관영 매체는 중국군이 연례 전략훈련에 외국군을 초청한 것이나 칭퉁샤 훈련기지를 러시아에 공개한 것 모두 처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국방부는 “중·러는 지역 안보와 안정을 공동으로 수호하는 것을 훈련의 과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새 시대 중·러간 전면적인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공고히 하고 양국 군 당국 간 실질적인 협력과 전통적 우의를 심화하며 더 나아가 테러 세력을 공동으로 타격하고 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함께 지키는 결심과 능력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합훈련은 중·러가 미국의 압박에 맞서 공조를 단단히 하는 것 외에도 테러에 공동 대응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이 아프간에서 무책임하게 철수함으로써 이웃 국가에 짐을 남겼다”며 “중국과 러시아는 지역의 평화 안정을 지키고 테러리스트 유입을 억제하는 데 공동의 역할을 할 필요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권지혜 베이징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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