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7월 31일] 죄인과 의인의 딜레마



찬송 : ‘어둔 죄악 길에서’ 523장(통 262)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마태복음 9장 9~13절


말씀 : 예수님의 공생애는 3년이었습니다. 이 기간 예수님의 사역은 여러가지였지만, 그중에서도 12명의 제자를 양육한 일이 소중합니다. 3년 동안 제자를 양육해 교회의 미래를 그들에게 맡기셨습니다. 이후 교회 공동체는 2000여년 동안 부흥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양육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제자를 양육하고 훈련하지 않았다면 교회의 미래는 없었을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12명의 제자를 어떻게 뽑았을까요. 인류의 미래가 달려있기에 예수님은 충분히 생각하시고 기도하시며 세웠을 게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런 관점에서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게 마태를 뽑는 과정입니다.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은 배우지 못한 어부여도 그들의 열심을 보고 뽑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태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민족 반역자로 유대인에게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죠.

마태의 집에서 파티가 열렸습니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제자들만 참석한 게 아니라 마태의 다른 손님도 있었죠. 마태복음 9장 10절에 보면 그 손님들은 세리와 죄인들이었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모습을 보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마태가 그들을 초대했을지라도 예수님은 거절했어야지. 마태가 그런 부도덕한 친구들을 불렀다 해도 예수님이 거절했어야지. 그런 파티였다면 자리를 박차고 나왔어야지.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면 자리를 구분해서 따로 앉았어야지. 어떻게 저런 사람들하고 함께 식사를 하며 말을 섞을 수 있는가?”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그러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전혀 없어 보입니다. 그들과 음식을 나누며 잔치를 즐기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예수님이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말이죠. 묵상할수록 깊은 뜻이 느껴지는 말씀입니다. 누가 예수님의 뒤를 따를 자격을 가지고 있을까요.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만한 사람일까요. 누가 예수님의 칭찬과 인정을 받을 만큼 대단한 일을 했을까요. 금식과 기도, 구제와 많은 십일조를 드린 바리새인들일까요. 성경을 많이 읽고 많이 알며 많이 쓰는 서기관들일까요.

예수님은 아니라고 하십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아니다. 넌 아직 내 제자가 될 수 없어. 나는 가슴을 치며 회개하는 죄인을 부르러 왔거든. 그에게 내가 필요하니까. 내가 그의 죄를 씻어 줄 테니까”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죄인인가요, 아니면 의인인가요.

기도 :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죄인을 불러 의인으로 삼아주시니 그 은혜에 감격할 따름입니다. 우리 심령에 구원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안성국 목사(익산 평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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