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장식 (30·끝) 평생을 후학 위해 강단에 서… 이들 좋은 목회자 되길

이장식 교수와 박동근 사모가 경기도 화성시 ‘광명의 집’ 앞마당에서 난간에 기댄 채 미소 짓고 있다.


케냐에서 돌아와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선 내게 마지막 봉사의 자리를 주셨다. 논쟁과 다툼이 많은 한국 개신교계에서 초교파적으로 신학자들을 규합해 신학연구소를 개설했다. 우린 매년 2회씩 연구지를 출판했고, 연구소는 에큐메니컬 신학연구소로 발전하게 됐다. 이 신학연구소는 내 호를 따 ‘혜암신학연구소’라 이름 붙여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내 나이 100세가 됐다. 죽음의 공포가 가장 심했던 지난 한 세기를 뜻 있게 살아남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였다. 물질적으로 빈곤한 케냐에서 평안한 인간미를 서로 나누며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 하나님 주시는 은혜로 인함이었다. 또한 이 나이, 이 건강의 나를 든든히 옆에서 보살펴 주는 아흔 된 아내가 있으니 이 또한 특별한 은혜가 아닌가 싶다. 그저 감사할 것들뿐이다.

늘 글을 써왔던 터라 요즘도 난 몇 시간씩 앉은 자리에서 글을 쓴다. 짧은 한시를 주로 쓰는데, 그중 하나를 소개하며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제목은 ‘일몰’이다. 내 삶을 하루로 표현한다면 지금은 아마 해가 지기 직전인 일몰일 것이다.

‘山高海深(산고해심) 路程險難(노정험난) 山戰水戰(산전수전) 伴侶老弱(반려노약) 西山日沒(서산일몰) 江大水深(강대수심) 彼岸視野(피안시야) 誰待我乎(수대아호).’ 산은 높고 바다는 깊으며 갈 길이 험하고 어려워 산과 바다에서 싸우고 싸웠다. 이제 아내도 늙고 약해지고, 해는 서산으로 저물어 간다. 넓은 강 깊은 물가에 이르러 저 건너편 언덕이 보인다. 그곳에서 누가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이 지구상에 수많은 사람이 태어났으나 자기가 태어날 것을 알고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또 이렇게 세상에 태어나서 인생의 수많은 날을 미리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만약 이런 분이 있다면 그는 우리의 형질이 형성되기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보고 계신 하나님일 것이다. 나는 이러한 진리를 읊은 시편 시인의 고백을 읽으면서 지나온 생의 그 많은 날들이 내가 미리 정한 날들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게 된다.

이제 남은 바람은 아무쪼록 우리 교회들이 참된 통회의 믿음으로 나아가고, 이로 말미암아 인류 역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평화와 정의, 생명의 밝은 역사로 발전했으면 한다. 평생을 후학을 위해 강단에 섰는데, 이들에게 바라는 건 그저 좋은 목회자들이 됐으면 하는 것이다. 물질 욕심 없이, 명예 욕심 없이 교회만 봤으면 한다.

새벽 일어나 기도를 드리는 지금 흩어져 있는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 그리고 함께했던 동역자들, 외국에 나가 있는 선교사들 이름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매일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도, 나도, 아내도 마지막 날까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주님 주신 소명대로 맡은 바 충성을 다하며 살길 기도한다. 삶의 고단함 가운데서도 늘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주님을 의지하며 삶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길 기원한다.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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