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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의 소리] 호박에 줄 긋는 사람들에게



‘천하의 영재를 얻어 가르치는 것’, 맹자가 말한 군자삼락(君子三樂) 가운데 세 번째 즐거움이자 즐거움의 완성이다. 총명한 제자를 키워 나보다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건 모든 스승의 로망일 것이다. 한 사람의 사고와 인성 형성에 영향을 주는 것, 그래서 결국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인격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교육의 본질이 달성될 때 얻어지는 희열 때문에 모든 교육자는 이 힘든 일을 업으로 택한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군자의 세 번째 즐거움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지하의 맹자가 놀라서 뛰쳐나올 지경이다. 영재라는 단어가 2500년의 세월을 지나 대한민국에서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꽃을 피웠다.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영재인 줄 착각해 호박에 줄 그어 수박을 만들려 한다. 대형학원과 족집게 과외, 논술반과 입시 컨설턴트, 교육 콘텐츠 회사가 성업 중이며 공교육 현장은 후일 나라를 먹여 살릴 1%의 영재를 발굴하기 위한 선발과 배제의 오디션장이 됐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다 보니, 수도권에 인구가 집중되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다.

영재로 태어나지 않은 나머지 아이는 존재감 없는 유령으로 의미 없는 학교생활을 한다. 영재 평가의 기준도 고무줄이라서 보통 아이가 영재로 포장되기 일쑤며, 그 과정에서 온갖 종류의 불공정과 ‘엄마·아빠찬스’가 개입된다. 이 영재들은 후일 상당한 성취를 거둔 후 마이클 샌델이 말한 능력주의(고학력 세습화를 통한 능력 있는 사람의 통치)의 함정에 빠진다. 이들은 자신의 힘으로만 그 자리에 오른 줄 알고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 영재 축에 끼지 못한 사람은 경제적 고통을 당할 뿐 아니라 삶의 존엄성마저 빼앗긴 채 패배감에 젖어 의미 없는 삶을 살게 된다.

교육에 관한 성경의 설명은 맹자와 완전히 다르다. 다음 구절을 보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에서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고전 1:27~28) 하나님 나라에 ‘천하의 영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세상의 모든 자식이 천하의 영재다. 호박은 호박이고 수박은 수박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이 만들어 놓은 차별의 질서가 하도 견고하기에 하나님이 개입하여 뒤집어엎겠다고 한다.

하나님의 전복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 아름다운 하나님의 세상을 망쳐 놓은 세력에 대한 거룩한 분노, 산봉우리는 낮추고 골짜기는 돋우려는 정의감, 불평등에 기인한 극우 포퓰리즘의 반역을 두려워하는 사회적 책임감 등도 모두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가슴을 채우고 있던 것은 차별과 배제의 질서에서 고통당하는 사람을 향한 긍휼의 마음이다. 우리 주님은 악한 체제에서 가난과 질병, 사회적 차별에 신음하는 이들을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9:36) ‘불쌍히 여기셨다’는 표현은 마치 내장이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는 뜻이다. 헬라어 어원 ‘비장’에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표현이 나왔다.

코로나19 시대, 비대면 수업으로 학력의 격차가 더 커졌다고 한다. 자기주도 학습 능력이 없는 학생, 없어져도 아무도 모를 것 같은 유령 같은 존재, 벌써 인생에 먹구름이 낀 것 같은 아이…. 이들이 바로 우리 주님이 애(腸)가 끊어질 듯 아파하며 불쌍히 여기던 아이들이다. 모든 스승의 스승인 예수님을 그리워하며.

장동민(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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