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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뇨로 썩어 들어가는 발, 고압산소치료로 절단 막는다

1인용 체임버에서의 고압 산소치료 재연 모습. 고농도 산소 흡입을 통해 당뇨 합병증으로 괴사된 발 조직에 혈류를 늘려 상처를 아물게 한다.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제공




장기 당뇨병 환자 15∼20% 앓아
환자는 발에 난 상처 잘 못 느끼고
괴사 상당히 진행된 후에야 알아
치료 늦어지면 무릎 위까지 절단

젊어서부터 당뇨병을 앓아온 김주연(53·가명)씨는 2년 전 왼쪽 발가락에 난 작은 딱지를 손톱깎이로 떼내다가 상처를 냈다. 작은 상처여서 크게 신경쓰지 않았는데, 몇 달이 지나도 나아지기는커녕 상처가 점점 커지고 썩은 냄새까지 났다. 진단 결과 당뇨 합병증으로 발이 썩어 들어가는 족부궤양으로 판명됐다. 발 내부에 세균 감염이 많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 의료진은 우선 발을 절단하지 않고 최대한 보존하기 위해 감염 조직과 염증 부위를 제거하는 수술을 했다. 당뇨로 인한 혈관질환으로 피 순환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돼 혈관을 넓히는 시술도 추가로 받았다. 하지만 발목 아래쪽으로 통하는 작은 혈관까지 수술 효과는 충분치 않았고 괴사된 발가락 부위에 빠르게 살이 돋아나지도 않았다.

김씨 같은 오랜 당뇨병 환자들의 15~20%는 평생 한 번 이상 당뇨발로 불리는 ‘당뇨병성 족부궤양’을 겪는다. 당뇨발 환자의 30%는 치료에 실패해 결국 하지를 잘라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30초에 한 명씩 지구상 어딘가에서 당뇨발로 인한 하지 절단이 진행된다는 보고도 있다.

당뇨발 30%, 하지 절단

당뇨발은 당뇨병으로 인해 감각신경과 자율신경이 기능을 잃고 혈관이 막혀서 발 부위 피부가 쉽게 손상되고 세균 감염에 취약해지면서 생긴다. 감각신경이 무뎌지면 환자들은 발에 난 상처를 잘 못 느끼고 감염과 괴사가 상당히 진행될 때까지 알아 차리지 못한다. 겨울에 난롯가에 양발을 두고 있다가 2도 이상의 심한 화상을 입었는데도 모르다가 물집이 올라온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된 환자 사례도 있다. 또 자율신경이 제 역할을 못하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땀이 나지 않는데, 피부가 보습 작용을 하지 못하면 외부 자극에 쉽게 상처가 난다.

일반 동맥경화(혈관이 딱딱해지고 좁아져 막힘)는 혈관 일부에서 발생하지만 당뇨병에 따른 혈관질환의 경우 대부분의 혈관에서 일어난다. 동맥경화와 달리 팔다리 말단 부위의 미세 혈관까지도 모두 좁아지는데, 말초 조직에 피가 통하지 않게 돼 허혈 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결국 심장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발에 피가 통하지 않아 괴사가 일어나는 것. 피가 안 흘러가기 때문에 감염이 발생해도 백혈구나 항생제 같은 세균을 억제하는 물질이 잘 도달하지도 않아 치료가 어려워진다. 당뇨발 환자의 상당수가 감염이 꽤 많이 진행된 뒤 병원에 오는 이유다.

치료가 늦어질 경우 발가락 뿐 아니라 발목이나 무릎 위 부위까지 절단할 수 있다. 당뇨발로 한 쪽 다리를 절단한 환자는 정신적 스트레스와 함께 심폐 기능이 떨어져 5년 안에 50% 이상이 목숨을 잃는 것으로 보고된다.

앞서 김씨의 경우도 우연히 발에 난 상처로 세균 감염이 꽤 많이 진행됐으나 티가 나지 않아 심각성을 즉시 깨닫지 못했다. 뒤늦게 병원 문을 두드렸지만 충분한 수술 효과를 얻지 못했고 발가락을 절단해야 하는 아찔한 상황에 처했다. 다행히 김씨는 근래 일부 병원에서 치료에 시도되고 있는 ‘고압산소 치료’를 받고 발을 잃을 위기를 넘겼다.

고압산소 치료는 ‘체임버’라는 밀폐된 곳(2기압 이상 압력 공간)에서 일반 대기압 보다 2~3배 높은 고압 산소를 주입받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100% 가까운 산소만 호흡해 혈액 속 산소 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증가된 혈액 속 산소는 피가 부족해 괴사된 발 조직 내 산소 투과도를 높인다. 썩은 부위에 산소 공급이 늘면 그 부위 골수에서 혈관을 새로 만드는 줄기세포 분화를 촉진하고 혈관 성장 인자(VEGF)의 분비도 증가한다.

최근 고압산소치료실을 개설하고 당뇨발 치료에 접목하고 있는 한림대동탄성심병원 정형외과 김성재 교수는 10일 “만성 당뇨 환자들은 혈관을 만드는 줄기세포의 성장과 분화에 중요한 효소(NOS-3)의 활성이 떨어져 있는데, 고압산소치료를 통해 상승한 산소 농도가 이 효소의 생성을 증가시키는 것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또 고압산소 치료로 상처 부위 산소 공급이 늘면 상처 회복을 돕는 콜라겐 합성이 3배 증가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고압산소 치료는 괴사 부위의 세균 감염을 억제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우리 몸에서 세균을 잡아먹는 백혈구들은 주로 산소를 이용해 공격하는데, 고압산소 치료를 통해 증가된 혈액 내 산소로 백혈구의 이런 공격 기능이 강화된다”고 덧붙였다. 국내외 다수 논문을 통해 고압산소 치료의 당뇨발 치료율은 최고 91%까지 보고돼 있다.

김씨는 두 차례 수술 전후 14번의 고압산소 치료를 받았고 살이 아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라졌던 발의 감각도 돌아왔다. 김씨는 “드레싱(상처 부위 소독)할 때 생리식염수를 뿌리는데 항상 간호사가 ‘차갑습니다’라고 얘기하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면서 “고압산소 치료 후에는 몸에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식염수가 차갑다고 느껴졌고 발의 신경이 다시 회복된 것을 알 수 있었다”며 기뻐했다.

김 교수는 “당뇨발 환자들은 막힌 발의 혈관을 확장하는 시술이나 수술을 시행해도 미세 혈관까지 피의 흐름이 좋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고압산소 치료가 미세 혈류의 산소 농도를 올려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면서 “김씨의 경우 엄지 발가락을 절단할 위기였는데, 고압산소 치료 도움으로 발가락을 잃지 않고 잘 회복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10회 이상 꾸준히 치료받아야

일부 당뇨병성 족부궤양 환자들은 혈관이 막히고 신경까지 죽어 수술해도 피가 나지 않고 통증도 못 느껴 마취없이 수술하기도 한다. 김 교수는 “하지만 고압산소치료를 10회 이상 꾸준히 받으면 수술 부위 출혈이 증가하고 감각신경이 호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당뇨발 치료에 고압산소 치료를 접목해 발을 최대한 보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덧붙였다.

특히 무릎과 발목 아래 작은 혈관들이 막힌 경우 고압산소 치료가 필요하다. 큰 혈관들이 막힌 경우는 혈관 시술로 혈류를 확보할 수 있지만 작은 혈관들은 물리적으로 혈관을 넓히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직에 전달되는 산소 농도를 증가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고압산소 치료는 족부궤양이 꽤 진행되거나 발이 이미 괴사돼 수술이나 시술이 필요한 경우 14회까지는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김 교수는 “여러 연구를 통해 심한 당뇨발에서 고압산소치료가 발목 위 절단 빈도를 낮추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모두 치료 성과가 있는 것은 아니다. 조직 괴사가 아주 심해 다시 살아날 수 없을 정도로 썩었다면 회복이 힘들다”고 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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