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종석 (1) LG맨으로 30여년, 쉼 없이 즐겁게 일하던 어느날…

박종석 엔젤식스플러스 대표가 지난달 19일 서울 서초구 엔젤식스 사무실에서 LG이노텍 은퇴 후 자신의 삶과 신앙을 이야기하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최근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발표했을 때 안타까움과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LG전자 스마트폰은 늦둥이 같은 존재였으니 말이다.

LG에서의 38년을 돌이켜 보니 2019년 LG이노텍 대표로 은퇴할 때까지 평생 LG맨으로 살면서 꽤나 즐겁게 일했던 듯싶다.

즐겁게 일하니 성과가 따라왔다. 해외 가전업체들이 장악하던 텔레비전 시장에서 우리나라가 전 세계 디지털TV 시장을 선도하는 데 일조했다.

텔레비전만 만들던 나에게 새롭게 주어진 업무는 스마트폰이었다. 당시 LG전자 스마트폰은 경쟁사에 밀려 고전했다. 퇴근할 때면 가방 안에 경쟁사 스마트폰까지 담아 집으로 갔다. 직접 써보며 고민했다. 후발주자인 만큼 직원들이 쏟아내는 아이디어도 일일이 검토했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아 소비자도, 경쟁사도 모르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를 찾기 위해 임직원들과 불철주야 노력했다. 다행히 몇몇 제품에 대한 시장 반응은 좋았다. 실적도 점차 좋아졌다. 이른 감은 있지만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쉼 없이 일하면서도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는 과정이 엔지니어 경영자인 내 적성에 맞았던 듯 싶다.

어느 순간 내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은 진단명을 쉽게 내리지 못했다. 나 역시 몸이 몹시 힘드니 ‘번 아웃’ 증후군이 아닐까 생각할 뿐이었다. 잠을 잘 수 없었고, 심장이 두근거렸으며 화기가 몸 안에 남아있는 듯 했다. 회사는 그런 나에게 1년간 회복의 시간을 줬다. 언론은 스마트폰 사업이 제자리를 잡아가던 그때 이유도 알리지 않고 떠난 나를 두고 추측과 억측을 쏟아냈다.

휴식의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즐겁게 일했는데도 번 아웃이 왔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가 뭘 잘못했냐며 하나님께 원망했다. 답을 찾았다. 나는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을 숭배했고 교만했다. 우상은 스마트폰이었다.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믿는 교만도 있었다.

하나님은 ‘나의 시간’ 대신 ‘하나님의 시간’으로 회복시켜 주셨다. 기적 같은 체험을 통해 한시라도 빨리 업무에 복귀하려고 목사님을 만났고 기도원도 가 봤지만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회복은 더디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휴지에 잉크가 번지듯 성경 말씀이 가슴에 깊이 스며드는 경험을 했다.

회사로 돌아간 나의 마지막 근무지는 LG이노텍이었고 은퇴는 갑자기 찾아왔다. 놀랍게도 일할 때 그렇게 즐거웠던 내가 은퇴한 뒤 더 재미난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 재미의 차이도 알게 됐다. 지금의 재미는 깨달음이 있는 재미라는 것이다. 오랜 시간이 걸려서야 알게 된 깨달음의 재미. 그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약력=1958년 충남 예산 출생. 81년 금성사(현 LG전자) 입사, 99년 디지털TV 연구소장(상무), 2008년 PDP TV 사업부장(부사장), 2010년 MC사업본부장, 2016년 LG이노텍 대표, 2019년~ LG 이노텍 자문 겸 엔젤식스플러스 대표

정리=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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