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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골든라즈베리상



매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이 열린다. 라즈베리는 산딸기를 뜻하지만 야유한다는 의미도 있다. 혀를 입술 사이에서 진동시켜 소리를 내며 야유하는 것을 ‘Blow a raspberry’라고 한다. 골든라즈베리 시상식이 딱 그런 의미다. 최고의 영화와 감독, 배우를 선정해 주는 상이 아니라 최악의 영화·감독·배우를 뽑아 조롱하는 행사다. 미국 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으면서 혹평을 받은 영화나 배우가 타깃이며, 수상자에게는 금색 칠을 한 산딸기 모양의 트로피를 준다. 직접 상을 받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런 모욕을 유쾌하게 웃어넘길 수 있는 대인배 스타만 간간이 참석한다.

야유와 조롱의 대상이라면 정치인이 빠질 수 없다. 그래서 미국의 유명 정치인이 골든라즈베리상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자로 선정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지난 23일 열린 제41회 시상식에선 전직 뉴욕시장이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측근이던 루디 줄리아니가 2관왕을 차지했다. 다큐멘터리 형식의 코미디 영화 ‘보랏2’에 잠깐 등장한 일로 최악의 남우조연상과 스크린 콤보상을 받은 것이다. 줄리아니가 이 영화에서 보여준 것은 연기가 아니라 실제 행동이었다. 그가 제작진에게 속아 여기자 역할의 배우와 호텔에서 가짜 인터뷰를 한 뒤 침대에 누워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는 추잡한 장면이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혔다.

여러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트럼프는 줄리아니의 골든라즈베리 선배다. 트럼프는 1991년 코미디 극영화 ‘귀신은 사랑 못해’로 최악의 남우조연상, 2019년에는 다큐멘터리 ‘데스 오브 어 네이션’과 ‘화씨 11/9: 트럼프의 시대’로 최악의 남우주연상 수상자가 됐다.

2005년에는 다큐멘터리 ‘화씨 9/11’에 나온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나란히 골든라즈베리 후보에 올랐다. 당시 럼스펠드가 남우조연상을 거머쥐었고, 부시는 남우주연상에 이어 라이스와 함께 스크린 커플상까지 차지했다.

천지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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