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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였던 세계적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 “나의 회심은 의심을 지나는 여정이었다”





“나는 도대체 왜 무신론을 포용했던가. 그건 유행이었다. 자율성을 원하는 내 욕구와 잘 들어맞기도 했다.…프로이트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내가 어떤 초월적 실체나 근거의 영향도 받지 않고 맘대로 행동하기 위해 무신론을 창안한 거라면 어떻게 될까. 내가 견지하는 무신론의 객관적 증거는 무엇인가.”

21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석학으로 꼽히는 알리스터 맥그래스(사진)가 18세 때 영국 옥스퍼드대 웨드햄칼리지 자연과학 전공 장학생으로 선발됐을 당시 품었던 생각이다. 북아일랜드 수도 벨파스트의 의료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969년 종파 간 갈등으로 빚어진 북아일랜드 유혈사태를 보며 “종교야말로 폭력의 직접적 원인”이란 생각을 품고 자랐다. 대학 진학을 위해 화학을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저작에 심취하면서부터는 아예 ‘반(反)종교적 무신론자’로 돌아선다. 당시 대학가를 뒤덮은 68혁명의 여파와 마르크스주의도 맥그래스의 무신론적 경향에 한몫했다.

맥그래스가 입장을 선회한 건 진리로 여겼던 자연과학과 심리학 이론, 마르크스주의 모두 ‘아직 반증되지 않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걸 인지해서다. 그는 인생의 진리, 세상의 큰 그림이란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그간 기피해온 종교를 옥스퍼드대에서 맘껏 탐구해보기로 한다.

책은 맥그래스가 옥스퍼드대 수학 중 신앙과 지성을 갖춘 과학자를 만나 교류하고, 기독 양서를 탐독하던 중 회심한 내용을 엮은 것이다. 그는 찰스 쿨슨 옥스퍼드대 이론화학 교수와 대화를 나누다 ‘과학과 신앙은 양립할 수 없다’는 편견을 버린다. “과학과 종교적 신앙은 그 나름의 독특한 접근법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통찰력을 각기 제공하며 기독교는 인생에 관한 장대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걸 깨닫는다. CS 루이스의 에세이집 ‘그들은 논문을 요구했다’를 읽으면서는 기독교 신앙의 지적 포용력이 상당히 커, 과학뿐 아니라 예술, 윤리 등도 모두 수용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는다.

22세에 옥스퍼드대에서 분자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맥그래스는 2년 뒤 같은 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이후 캐나다 리전트 칼리지, 옥스퍼드대 위클리프홀 학장 등을 역임하며 ‘신학은 무엇인가’ 등 전 세계 신학도를 위한 책을 다수 펴냈다. 과학과 신학이란 두 개의 산 정상에 오른 경험을 토대로 무신론자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반박하는 책도 냈다.

신앙이란 “인간의 의미와 가치, 목적 등 궁극적 질문에 대한 답변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망상을 거부하는 것”이고, “인간은 여러 방식으로 합리적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성찰은 과학과 신앙 간 바람직한 관계란 무엇인지 숙고하게 만든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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