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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포츠] “부상 달고 산 농구인생… 웃으며 떠날 수 있어 행복해요”

용인 삼성생명 김보미가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휴먼센터 팀 훈련장에서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여자농구 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컵 옆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김보미는 삼성생명이 15년만에 우승하는 데 핵심으로 활약했다. 용인=권현구 기자


용인 삼성생명 김보미가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삼성생명휴먼센터 팀 훈련장에서 여자프로농구 WKBL 챔피언결정전 우승컵을 들어보이며 미소짓고 있다. 용인=권현구 기자


“시즌 중반 휴식기 때부터 짐을 많이 빼놨어요. 아직도 옮길 짐이 많네요. 제가 잘 못 버리는 성격이거든요.” 웃는 김보미(35)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남아있지 않았다. 전날 구단과 5월 발효될 은퇴동의서를 미리 작성한 터였다. “은퇴동의서를 이렇게 웃으며 쓸 줄 몰랐어요 하하, 많은 관심을 받으니까 부담스럽지만 그간 노력하고 살아온 게 생각나서 행복하기도 하고요.”

김보미는 용인 삼성생명 동료들과 지난 15일 여자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전 소속팀 청주 KB스타즈를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여자농구 역사상 정규리그 4위가 따낸 첫 우승이었다.

치열했던 승부 뒤 동갑내기 김한별이 챔피언결정전 시리즈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했지만, 5차전 MVP는 그의 몫이었다. 남녀 프로농구를 통틀어 그처럼 팀의 중심선수로 우승을 차지하며 은퇴 시즌을 장식한 예는 매우 드물다.

국민일보는 우승 사흘 뒤인 지난 18일 경기도 용인 훈련장에서 김보미를 만났다. 그에게는 열흘 간 언론과의 인터뷰가 빼곡히 잡혀있었다. 이후에는 고향 광주로 내려가 친정 식구들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다. 남편인 울산 무룡고 농구팀 배경한 코치는 30일부터 열릴 춘계 대회를 준비하느라 당분간 함께하지 못한다.

광주 농구소녀의 파란만장 코트인생

김보미는 처음 농구를 접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광주에서 나고 자란 그는 초등학교 4학년에 이미 또래보다 훨씬 큰 155.5㎝였다. “다른 학교에서 감독님이 오셔서 155㎝ 이상인 사람 손들라고 하시더라고요. 한 번 놀러오라시길래 수피아여중 훈련장으로 갔죠. 언니들 운동하는 게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그의 선수 인생은 굴곡이 많다. 6개 구단이 있는 리그에서 5개 팀을 거쳤으니 웬만한 구단 팬들은 김보미를 한 번씩 ‘우리 선수’로 불러본 경험이 있는 셈이다. 신인 드래프트 3순위를 받는 등 어릴 때부터 잠재력을 인정받았지만 선수 생활 중 4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활약도가 올라갈 때마다 부상이 도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김보미는 처음 부상을 입던 순간도 기억했다. “고3 동계훈련 중 점프를 했는데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어요. 무릎이 엄청 부었는데 작은 정형외과에서 물만 빼고 경기를 뛰었어요. 사실 그러면 안되는데 그땐 몰랐죠.” 이후 부상은 프로 생활 내내 따라 붙으며 그를 괴롭혔다.

교통사고에서 해피엔딩 우승까지

이번 시즌에도 부상은 있었다. 지난해 12월 김보미는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이틀 뒤 출전 명단에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놓고 싸우던 팀을 외면할 수 없어서였다. “목 뒤쪽과 어깨가 두들겨 맞은 것처럼 아팠어요. 한의원까지 다녀가며 경기를 뛰었지만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고 밸런스가 깨지더라고요.”

전화위복이었는지 후유증에서 회복하며 컨디션이 급격하게 올랐다. 6라운드 부산 BNK썸과의 경기에서는 개인 최다인 29점을 몰아넣었다.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는 상대 수비를 그림같이 제치며 던진 왼손 훅슛으로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선수가 나이를 먹다보면 기존에 가진 것만 하게 되죠. 그런데 임근배 감독님이 ‘양동근 선수가 대단한 이유는 절대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 들어서도 계속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했다’면서 저도 그렇게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김보미는 조언을 듣고 수년 간 노력한 게 이번 시즌 비로소 결실을 맺은 것 같다고 했다.

선수 인생 마지막 경기인 5차전에서 오히려 그는 부담을 덜고 뛰었다. 우승을 꼭 해야겠다는 마음이 아니라, 여기서 끝나더라도 정말 행복한 마무리라고 생각해서다. “마지막으로 코트에 들어설 때 (손으로 두드리며) ‘코트야 잘 부탁해’라고 했어요. 간절한 우승보다는 후회없는 마무리를 하고 싶었죠.” 다행히 결말은 해피엔딩이었다.

림과 백보드 너머의 삶

김보미의 은퇴는 원래 몇년 더 일찍 계획돼 있었다. “(우리 나이로) 스물일곱, 여덟 때 수술하면서 많이 아팠어요. 그때 서른둘까지는 버티고 은퇴하자, 늦어도 서른다섯에는 하자고 했거든요.” 은퇴를 계획한 2018년 당시 소속팀 KB가 준우승을 하면서 욕심이 생겼다. 우승컵을 들고 코트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구단과 2년 재계약 뒤 미국을 여행하던 중 보호선수 명단에서 제외, 팀을 옮겨야 했다. 의지와 상관 없는 이적이었다.

지난해는 은퇴 마지노선으로 정해놓은, 우리 나이로 서른다섯되던 해였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조기종료된 데다 리그 꼴찌로 끝난 시즌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진 않았다. 은퇴를 하는 이유에는 남편도 있다. 울산에서 일하는 남편이 자신을 보러 주말마다 피곤을 무릅쓰고 올라오는 게 안쓰러워서다. 그는 “남편이 4년이나 희생했으니 나도 이제는 내조를 하고 싶어 결심을 굳혔다”고 말했다.

김보미는 은퇴 뒤의 버킷리스트를 아직 채워가는 중이다. 제주도 한달 살기와 시댁·친정 식구들과 시간 보내기가 우선이다. 이번 시즌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익힌 베이킹과 필라테스는 자격증 취득이 목표다.

여자농구의 미래 그리고 올림픽

극적인 챔피언결정전 승부에 잠시 대중의 관심이 쏠렸지만, 여자농구 현실은 녹록치 않다. 향후 지도자를 염두에 둔 김보미는 최근 여자농구 선수들이 승부욕이 약하단 지적을 받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중1 때만 해도 3학년에 5명, 2학년에 3명, 저희 학년에 3명은 있었다. 경기에 뛰려면 죽기 살기로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요즘엔 5~6명이 전부인 곳이 많다”면서 “저변이 무너지면서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주전 경쟁 자체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선수들의 열정이나 투지가 부족해진 건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가 은퇴하는 올해 한국 여자농구는 13년만에 올림픽 본선에 복귀한다. 김보미는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에서 태극마크를 달아봤지만 올림픽 무대는 밟아보지 못했다. 그는 “제가 여기서 은퇴를 안한다고 한들 저를 뽑겠나”하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이번에 저희가 챔피언결정전에서 뛴 것처럼 올림픽에서 강팀을 상대로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간절함으로 뛴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어린 선수들 마음에도 불을 지필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자연스레 여자농구 저변도 넓어지지 않을까요. 저는 여기 제 방에 누워서 TV를 보며 응원하겠습니다, 하하하.”

용인=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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