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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가장 낮은 곳에 있는 하늘



동지가 지났으니 이제 빛의 시간이 다가온다. 어둠의 터널에 갇힌 듯 암담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은 저 먼 곳에서 얼핏 떠오르는 오련한 빛을 보고 안도한다. 어둠이 끝나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연말을 맞을 때마다 한 해를 엄범부렁하게 살았다는 자책과 후회가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들곤 한다. 성탄절이 연말 즈음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위안인가. 성탄절은 선물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중심에서 비껴난 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 유력한 이들로부터 비존재 취급을 받던 이들을 감싸 안는 망토처럼 하늘이 땅에 내려오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된다. 그분에게는 속된 것이 하나도 없다. 쓸모없는 것도 없다. 모두가 하나님의 숨을 품고 있는 신비이다. 예수, 그분은 가장 낮은 곳에 내려오신 하늘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랍비 조너선 색스가 ‘망가진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라는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매주 금요일 새벽이면 네미로프(Nemirov)의 랍비가 사라지곤 했다. 회당과 학교에도 없었고, 문이 늘 열려 있는 그의 집에도 없었다. 어느 날 리투아니아 출신 학자 한 사람이 그를 만나러 왔다. 랍비가 부재중이라는 말을 전해 들은 그는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분이 계신 곳이 어딘지 혹시 아세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늘이 아니면 어디겠어요”라고 대답했다. 마을 사람들은 평화와 음식과 건강이 필요했고, 랍비는 하늘에 올라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탄원하고 있을 거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그런 깊은 신뢰에 감명을 받은 리투아니아인은 그 사라짐의 비밀을 밝혀보기로 작정하고는 목요일 밤 랍비의 집에 몰래 숨어들었다. 그는 다음 날 아침 해가 떠오르기도 전에 랍비가 조용히 탄식하며 우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랍비는 벽장에서 낡은 옷꾸러미를 꺼내 몸에 걸쳤다. 거룩한 사람의 옷이 아니라 농부의 옷이었다. 랍비는 도구함에서 도끼를 꺼내 들더니 밖으로 나갔다. 리투아니아인은 몰래 뒤를 밟았다. 랍비는 마을을 지나 숲에 들어가더니 굵은 나무 한 그루를 찍어 넘어뜨린 후 그것을 잘게 잘랐다.

그는 장작을 어깨에 짊어지고 마을로 돌아가 어둑한 뒷길에 있는 허름한 집으로 가더니 문을 두드렸다. 가난하고 병든 늙은 여인이 문을 열었다. “누구시죠?” “저는 바실리라는 사람입니다. 나무를 좀 팔고 싶어서요. 헐값에 드리겠습니다.” “사고는 싶지만 돈이 없어요.” “외상으로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갚으라고요?” “나는 아주머니를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으시지요? 그분께서 제가 보상받을 방법을 찾으실 겁니다.” “하지만 나는 병이 들어 불을 피울 기운조차 없답니다.” “제가 피워 드리지요.” 랍비는 아침 기도문을 읊조리며 불을 피운 후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리투아니아 출신 학자는 이 모든 것을 지켜본 후 랍비의 제자가 되었다. 그날 이후 그는 마을 사람들이 방문객들에게 랍비가 하늘에 올라갔다고 말하면 더 이상 웃지 않았다. 오히려 “그분은 더 높은 곳에 계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이 아름다운 이야기는 하늘은 저 높은 곳, 인간의 손길이나 발길이 미치지 않는 다른 차원의 공간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분열된 세상, 상처 입은 사람들의 현실 때문에 깊이 아파하고, 어떻게든 곤경으로부터 그들을 건져내려는 마음이 있는 곳, 바로 그곳이 하늘이다. 진심으로 주님이 오심을 기다린다면 낮은 곳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그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전면적으로 세상의 모든 아픔을 다 부둥켜안을 수는 없다 해도, 지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어둠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이들 곁에 다가가야 한다. 바로 그곳이야말로 땅으로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만날 장소이니 말이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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