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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의 골짜기 지나 어떤 길 걷게 하실지 기대”

김종양(오른쪽) 박상원 선교사 부부가 지난해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중남부아프리카 한인선교사대회에 참석해 기념촬영한 모습. 김종양 선교사 제공


김종양 선교사와 긍휼선교회 회원들이 지난 7월 에스와티니의 한 마을교회에서 식량과 마스크를 모아둔 채 주민들을 맞이하고 있다. 김종양 선교사 제공


“죽음은 늘 우리 눈앞에 있습니다. 동시에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이 또 어떤 여정을 걷게 하실지 기대됩니다.”

고희를 훌쩍 넘긴 선교사는 코로나19에 감염돼 죽음의 문턱까지 다다랐던 경험이 소명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통신환경이 열악해 인터넷 전화로 대화하는 내내 끊김과 연결을 반복했지만, 그의 목소리에서 여생을 아프리카 선교에 매진할 것이란 확신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1985년 파송돼 아프리카대륙선교회를 설립한 김종양(74·이시드라교회) 선교사는 아내 박상원(70) 선교사와 함께 지금까지 8개국에 600여개의 교회를 개척하고 교육·의료·농장운영 등의 사역을 펼쳐온 아프리카 선교의 대가다.

부부에게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이 나타난 건 지난 8월 중순이었다. 교회 청년 6명과 긍휼선교회를 조직해 6월부터 에스와티니 전국을 돌며 3000여 가정에 식량과 마스크를 전달하고 난 직후였다. 선교관 인근 의료원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은 지 3일 만에 소식이 왔다. 결과는 ‘양성’. 눈앞이 캄캄했다. 당장 입원할 병원이 없어 선교관에서 격리 생활을 시작했다.

의료원에서 준 약을 복용하며 회복을 기대했지만,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호흡은 가빠졌다. 김 선교사가 2013년 설립한 에스와티니기독대의 카바씨 이사장이 소식을 듣고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덕분에 부부는 정부에서 운영하는 루봄보병원에 입원할 수 있었다. 왕실 가족과 정부 고관들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었지만, 의료환경이 열악하긴 마찬가지였다.

“에스와티니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였지만 밤이 되면 의료진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약도 충분치 않은 상황이었는데 아내에겐 병원에 확보된 약이 효과가 없어 고통에 시달리다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환자 중엔 우리 부부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 고령 확진자들의 사망 소식도 계속 들려왔지요.”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병실에선 박 선교사의 손을 잡고, 병실 밖에선 기다란 병원 복도를 수십 번 왕복하며 하나님께 생명의 빛을 간구했다. 간절한 기도는 응답으로 이어졌다. 수소문한 끝에 병원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약국에 박 선교사를 위한 약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지인이 직접 배달해 준 약을 투여할 수 있었다.

2주간 입원 치료를 받은 부부는 선교원으로 돌아온 뒤 며칠 지나 코로나19 음성 판정을 받았다. 현지 의료 방침에 따라 지난달 말 받은 2차 검사에서도 음성 판정을 받으며 온전한 회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김 선교사는 “이 모든 게 우리 부부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해 준 동역자들 덕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에디오피아 의사인 디젠 선교사, 정부 파송으로 아프리카에서 40년 봉사하다 은퇴하신 민병준 박사, 한국에서 기도의 끈을 놓지 않은 협력교회와 성도들이 아니었다면 회복의 감격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건강 회복에 전념하는 부부는 이미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다음 사역을 기도로 준비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새 생명을 주셨으니 천국 가는 그날까지 힘 쏟아야지요. 에스와티니의 첫 의과대학이란 결실을 보고도 코로나19로 개강하지 못한 기독 의과대학의 문이 열리도록 기도해주세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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