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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션 톡!] “국민일보 때문에 ‘행복한 거지’ 됐다”



한 후원자가 지난 7월 아프리카미래재단(대표 박상은)에 50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강원도 삼척 작은 마을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촌노’라고 소개한 그는 후원금과 함께 한 통의 문자메시지를 전했습니다. 메시지에는 ‘국민일보를 통해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소식을 보고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까 싶어 내년 2월 50번째 결혼기념일에 아내와 여행하려고 10년 동안 모은 돈을 보낸다’는 사연이 담겨 있었습니다.

감사를 전하고 싶어 연결을 시도했습니다. 후원자의 목소리를 듣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재단에 남겨진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하자 낯선 여성이 응답했습니다. 여성은 자신을 후원자의 지인이라고 소개하며 “원치 않으실 겁니다. 화를 내실지도 몰라요”라며 그와 연결을 거듭 거절했습니다.

‘후원자 추적기’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확보한 유선번호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에도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후원자의 이름을 얘기하며 통화가 가능할지 묻자 “여보” 하며 전화를 바꿔줬습니다.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음직한 사투리가 목소리에 배어있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후원자가 말했습니다.

“내 나이 일흔다섯이에요. 가방끈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끊겼고요. 인터넷도 핸드폰도 익숙치 않아 지인의 도움 받아 전달한 거지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려다 보니….”

그러면서 자기 이름이 기사화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거듭 요청했습니다. 후원자의 이름 석 자 대신 ‘권씨’가 미션톡의 주어가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권씨는 마을에서 물이 새거나 부뚜막이 무너진 이웃집을 돌며 고쳐주는 일을 업으로 살아왔습니다. 고생 끝에 수리를 마친 그에게 쥐어지는 돈은 불과 몇 만원. 하지만 그조차 그의 주머니에 오래 머물지 못했습니다.

권씨는 “국민일보 때문에 거지가 됐다”며 웃었습니다. 30년 넘게 국민일보를 봤는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를 볼 때마다 가만있을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호기심에 포털 검색창에 그의 이름을 검색했습니다. 컴퓨터 화면에서 한동안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태안 기름유출 사고 주민 돕기’ ‘북한 결식어린이 돕기’ ‘화재로 무너지거나 수해 입은 교회’ 등 수십 개의 기사 말미 성금자 명단에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등장했습니다. 2012년엔 한 해 동안 아프리카 난민 돕기, 통일기금 기탁 등을 위해 6600만원이란 거액을 내놨습니다.

금혼식을 기념하려 꼬박 10년을 모은 여행비를 성금으로 보내겠다는 결심을 하기가 어렵진 않았을까. 보기 좋게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평생 수리공으로 살며 짐을 지다 보니 양쪽 무릎이 다 망가지고 허리도 온전치 않지요. 아내가 ‘기쁜 일에 씁시다’ 하길래 순종했을 뿐입니다.”

존경스럽다는 기자의 말에 권씨는 “코로나19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 자고 끼니도 거르며 환자를 돌보는 이들이 예수님 성품 닮은 존경받을 분들”이라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49년 전 술에 찌들어 죽을 인생을 살려 신앙을 심어주고, 결혼을 통해 사람 구실 하게 해 준 아내가 고마울 따름”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속옷은 수십 년째 기워 입고 라면이 주식이라는 이 부부의 50번째 결혼기념일 모습이 궁금했습니다.

“기념일에 한우 고기 한 접시 먹여줄까 싶어 얘길 꺼냈더니 국밥이나 한 그릇 먹자 합니다. 천성이 이렇습니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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