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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예배, 최고의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드리는 것



1917년이었다. 그러니 백년도 훌쩍 넘었다. 1917년은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해다. 놀랍게도 그가 쓴 책은 아직도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있다. 그는 누구인가. 오스왈드 챔버스 목사님이다. 그의 책은 무엇인가. ‘주님은 나의 최고봉’이다.

이 책은 성도들이 1년 365일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살도록 돕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의 원래 제목이 예배에 대한 가장 선명한 정의를 보여준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My Utmost For His Highest’다. 곧이곧대로 번역한다면 ‘최고의 하나님을 향한 나의 최선’이라고 할 수 있다.

수없이 예배를 드렸을 당신은 예배를 한마디로 무엇이라 정의하시는가. 사람마다 예배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최고의 하나님께 나의 최선을 드리는 것’보다 더 탁월한 예배 정의가 있을까.

하나님이 한없이 높으신 분이고 사람이 가장 낮은 자임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자리가 예배 자리다. 예배 모든 순서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이 아니며 하나님이 될 수 없는 존재임을 단언하고 고백한다.

예배의 다양한 순서는 예외 없이 하나님이 얼마나 높으신 분인지 보여주고 사람이 얼마나 낮은 자인가를 너무 잘 드러낸다.

예배 가운데 누가 누구에게 찬양을 드리는가. 사람이 하나님께 찬양 드린다. 왜 그런가.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게 높고 위대하신 분이고 사람은 가장 정성 어린 찬양을 드려야 할 만큼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낮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떨 때는 찬양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자신을 찬양하는 것같이 느껴진다. 물론 예배의 유일한 판단자는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볼 때 가사는 분명히 하나님을 향하는데 초점은 자기가 받으려는 심사같이 여겨지는 찬양도 있다.

그런 자들은 자신의 찬양 외에 다른 모든 예배 순서에서 산만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찬양 후 다른 순서를 뒤로하고 과감히 밖으로 나감으로 그가 진정한 예배자가 아니었음을 스스로 입증하기도 한다. 예배의 찬양 가운데 하나님의 한없이 높음과 인간의 철저히 낮음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면 그 찬양은 무엇보다 통곡의 회개가 절실하다.

기도도 그렇다. 기도도 찬양처럼 하나님의 높으심과 사람의 낮음을 보여주는 예배순서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호칭이 전혀 없이 시작하는 기도가 있다. 도대체 누구를 향한 기도인가.

설교 같은 기도도 있다. 하나님을 훈계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목사님이나 성도들을 기도를 통해 가르치려는 것인가. 속절없이 긴 기도도 있다. 모 교회에서 있었던 실화다. 수요 예배 대표기도를 맡았던 권사님의 기도가 십 분이 지나도록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뒤에 계시던 담임목사님이 권사님의 옷자락을 끌어당겨 겨우 대표기도를 끝내게 했다.

누구 편에 설지 고민하지 말자. 대표기도는 개인기도와 다르다는 것만은 잊지 말자. 긴 대표기도에는 교만이 깃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머리를 숙이고 예배의 대표기도에 참여하자.

모든 교회의 그 날 대표 기도는 그 날 그 교회의 영성을 보여준다. 기도 가운데 지금 하나님이 그 교회에서 얼마나 높으신지 사람이 얼마나 겸비하는지 엿들을 수 있다. 100년 넘은 고백 ‘최고의 하나님을 향한 나의 최선’은 예배가 무엇인지 오늘도 확실히 말하고 있다.

(미국 퀸즈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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