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미분류  >  미분류

[이수진·조용신의 스테이지 도어] 이 세대가 망쳐놓은 희망, 어린이에게 떠넘기는 느낌

국공립 극장 공연이 기지개를 켜면서 어린이 공연도 재개되고 있다. 사진은 예술의전당의 어린이 프로그램 '에스메의 여름' 중 한 장면. 창작꿈터 놀이공장 제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극성을 부리자 가장 먼저 문을 닫았던 도서관, 전시관, 국공립극장들이 최근 문을 열기 시작했다. 민간 자본과의 합작 공연이라는 제한은 있지만 덕분에 가장 대표적인 국공립극장 가운데 하나인 예술의전당에서도 오랜만에 막이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됐다.

예술의전당을 비롯한 국공립극장들은 그동안 지역사회의 문화적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대부분 극장만이 아니라 전시장, 광장 등을 함께 운용하던 복합 문화 시설이기 때문에 특히 주말이나 방학 기간에는 마냥 밖으로 나가고 싶은 어린이들과 부모가 함께 방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실내외 공간을 제공했다.

대부분의 공연이 취소됐지만 그중 가장 취약했던 부문은 어린이 공연이다. 어린이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될 수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이유로, 그리고 대부분의 어린이 공연은 국공립극장에서 이뤄진다는 이유로 어린이 공연은 없는 일이 됐다.

국공립 극장의 제한적 개방 덕분에 어린이 공연도 조심스레 돌아왔다. 물론 돌아온다 해도 한 자리씩 건너 앉기 때문에 객석은 지난해의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그래서인지 매진되는 속도도 빠르다. 그만큼 목마르게 기다려 온 관객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예술의전당에서 매년 열려왔던 ‘어린이 가족 페스티발’이 열리기 한 주 전, 예술의전당 ‘비타민라운지’ 옆의 ‘1101 어린이라운지’에서는 ‘깜짝극장-이야기 숲으로 여행을 떠나자!’가 진행됐다. 말 그대로 잠시만 열리는 깜짝 놀랄만하게 짧은 이십분 가량의 무료 공연이었지만 내용은 충실했다.

‘어린이 가족 페스티발’에 참가하는 작품들의 주요 모티브를 담아 참여하는 어린이들로 하여금 궁금증을 유발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극장이 아닌 라운지에서 열리는 일종의 어린이용 이머시브 공연이라 모든 어린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우와 함께 움직였다. 배우가 숲에서 나갈 수 있도록 잃어버린 지도의 조각을 어린이가 함께 찾고, 단서를 가리키며 소리를 질러 알려주는 모습은 어찌나 오랜 만인지 심지어 뭉클할 정도였다.

이 깜짝 공연은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며 8월 7일 공연이 추가됐다. 이 짧은 시간 동안의 놀이 같은 연극을 즐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상 송출의 시대에 무대 공연의 미래가 있는가 하는 질문에 누구도 낙관적인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연이 뭔지도 모를 어린이들이 지도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 이야기의 퍼즐을 맞춰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무대 공연의 미래가 그렇게까지 어두울까 싶다.

예술의전당 어린이 가족페스티발은 올해에도 작년과 같이 세 작품을 올린다.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강아지똥’은 권정생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무대로 옮겼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인 똥이 주인공이다. 두 번째 작품인 ‘에스메의 여름’은 아이가 주인공이지만 함께 보는 어른들의 가슴을 더 많이 흔든다.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사실을 모르는 에스메와 이 사실을 에스메에게 어떻게 알려줘야 할지 모르는 할아버지가 함께 보내는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다. ‘네네네’는 스웨덴 극단 지브라단스와의 합작 공연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때문에 무산될 위기에 놓였었다. 하지만 영상을 통한 연습을 통해 개막까지 이르면서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합작 형태를 만들어냈다.

이 모든 공연은 한 자리 건너 앉기를 통해 기존 객석의 절반 이하만 운용하는 방식으로 공연된다. 어린 관객들은 혼자 앉아 공연 보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최초의 관극 경험이 양옆에 누구도 앉지 않는 경험인 어린이들이 이대로 계속 떨어져 앉아 공연을 보게 된다면 그것은 어떤 형태의 공연이 될까?

런던의 팔라디움 극장은 함께 예매한 일행은 이어서 앉고 그 숫자만큼 앞뒤로 자동으로 띄우는 예매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애당초 다닥다닥 앉아 공연을 보던 관객들은 앞뒤가 비면 오히려 쾌적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앉아 본 바에 의하면 쾌적하기보다는 섬이 된 듯한 고독이 밀려왔다. 이 외로운 관극이 미래에는 기본이 된다면 공연은 어떻게 바뀔까? 이 세대를 망쳐놓고 희망은 다음 세대에 떠넘기는 대책 없는 어른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이수진 공연 칼럼니스트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