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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과 신앙] 24년만에 귀국… “내가 받은 생명의 기적 나누고 싶어”

이길우 기프트오브라이프 한국지부 대표가 지난 1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공원에서 자신의 삶과 신앙을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인턴기자


이 대표(오른쪽 두 번째)가 4살이던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낸시 여사의 손을 잡은 채 헬리콥터에서 내려 백악관에 도착한 모습. 이길우 대표 제공


2013년 인제대 서울백병원 병실에서 심장병 수술을 주선한 필리핀의 다니엘라양과 함께 한 이 대표. 이길우 대표 제공


태어날 때부터 심장병을 앓던 소년에게 희망은 주어질 수 없는 선물 같았다. 치료받을 가정형편도, 수술이 가능한 의료 환경도 아니었다. 그런 소년에게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미국 대통령과 영부인의 손을 잡고 전용비행기에 올라 미국에서 심장수술을 받은 것이다. 이후 미국 가정에 입양된 소년은 20여년 만에 고향에 돌아왔다. 자신에게 새 생명을 선물해 준 기관의 한국지부 대표를 맡아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없는 전 세계 어린이들의 치료를 돕고 있다.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길우(41·브렛 할버슨) 기프트오브라이프(Gift of life) 한국지부 대표다. 최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대표는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속 말씀이 제 삶의 전부”라고 했다.

그에게 기적이 찾아온 건 4살이던 1983년이었다. 미국의 비영리 장기구득기관인 기프트오브라이프가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낸시 여사의 방한 소식을 듣고 백악관에 도움을 요청했다. 귀국할 때 심장병을 앓는 한국 어린이 2명을 미국으로 데려와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국내에 심장 수술이 필요한 어린이는 600여명. 이 대표는 어린이 2명 중 1명으로 선정돼 ‘에어포스원’(미국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장면이 어렴풋하게 기억납니다. 수술받은 뒤 병원에서 깨어났는데 며칠간 걷지 못해 고생했던 기억도 나고요. 낸시 여사에게 크리스마스 때 테디 베어 인형을 선물 받았는데 엄청 행복했던 느낌이 생생합니다.”

수술 후 미국의 한 가정에 입양된 그는 과거를 잊은 채 살았다. 학창시절에 자신이 입양아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고 정체성에 혼란을 겪기도 했다. 혼란기를 극복하게 해준 건 미션스쿨을 다니며 갖게 된 신앙이었다. 이 대표는 “당시 신앙의 멘토였던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길을 내주신다는 걸 깨달았다”고 회상했다. 졸업 후 보험회사에 취직해 평범한 미국인으로 살아가던 그에게 2004년 레이건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은 삶의 전환점이 됐다.

“뉴스에서 레이건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한 뒤 제 과거를 제대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이길우란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해 1983년 수술받았을 당시 기사를 썼던 뉴욕타임스 기자와 연락이 닿았어요. 그 기자와 소통하며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레이건기념관에 ‘낸시 여사를 만나고 싶다’는 이메일을 보냈지요.”

2007년 10월, 이 대표는 레이건기념관 행사에 초청돼 자신을 미국으로 데리고 온 낸시 여사를 만났다. 기념관엔 소년 이길우가 타고 왔던 에어포스원과 어린 시절 이길우의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이 대표와 낸시 여사의 극적인 재회는 한국과 미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 뉴스를 본 이 대표의 이모가 수소문해 한국에 있던 가족들도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의 본향을 되찾고 잃었던 과거와 마주한 그에겐 미래를 향한 결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제가 기프트오브라이프를 통해 새 생명을 얻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깨달았죠. 다른 사람을 도우며 사는 게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저의 길이라는 것을요.”

이 대표는 그해 말 보험회사를 나와 기프트오브라이프 소속 자원봉사자가 돼 한국에 왔다. 24년 만에 돌아온 조국은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없어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야 했던 과거의 한국이 아니었다. 1975년 설립된 기프트오브라이프도 매년 전 세계 1600여명의 어린이들에게 심장병 수술을 해주는 세계적인 규모의 비영리기관이 돼 있었다.

이 대표는 기프트오브라이프의 정식 직원이 된 2009년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서 우간다 출신의 제인 난욤비(12)양의 심장병 수술을 주선했다. 자신을 수술해 준 기관의 일원이 돼 도움을 준 첫 번째 어린이였다. 그는 “어린 환자들을 볼 때마다 꼭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며 “후원, 의료기관, 후송 등 숱한 변수를 뚫고 수술 아동을 만나는 순간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2011년부터 한국에 거주하며 심장병 수술을 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의 어린이들에게 선진 의료기술을 갖춘 나라의 의료진과 병원을 연결해주고 있다. 전문 의료진을 개발도상국에 데려가 현지에서 의술 교육을 하게 하거나 현지인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12명의 어린이가 이 대표를 통해 한국에서 수술받았다. 의료진이 수술 준비를 마치면 기프트오브라이프에서 비용을 부담해 심장병 어린이들을 데려와 치료하는 방식이다. 수술을 위한 후원요청과 모금은 늘 숙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글로벌 팬데믹으로 번지면서 이 대표의 고민도 커졌다. 수술이 필요한 우간다 어린이를 위해 후원금 모금을 완료했는데도 국내로 데려올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대표는 “의료환경이 열악할수록 아이들이 수술을 기다리다 풍토병이나 합병증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많다”며 “코로나19가 하루빨리 종식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저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졌듯이 기적의 씨앗이 될 아이들을 통해 전 세계에 그 사랑이 전해지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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