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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스포츠] 욕심요? 쭉∼ ‘골무원’으로 불렸으면…

울산 현대 스트라이커 주니오가 지난해 3월 13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H조 조별예선 2차전 상하이 상강과의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포효하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지난 24일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한 뒤 깜찍한 포즈를 취한 주니오의 모습. 울산 현대 제공


“브라질의 공무원도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한국 공무원과 같아요. 제 득점력과 스타일을 좋게 보시고 그런 별명을 붙여주신 게 웃기기도, 뿌듯하기도 하죠.”

프로축구 K리그에는 수많은 장신 스트라이커들이 있다. 우람한 체격과 높이로 수비진을 압도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공격을 책임져야할 그들 모두가 골을 잘 넣는 건 아니다. 매년 키 큰 근육질 스트라이커들이 K리그 문을 노크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버리고 마는 이유다.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현대의 주니오(34)는 외인 장신 스트라이커(187㎝)로서 ‘성공’했다고 평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2017년 대구 FC에서 12골(16경기)을 기록한 그는 2018년 울산 이적 후 22골(32경기), 19골(35경기)을 ‘폭격’했다. 그리고 올 시즌. 주니오는 8경기 9골로 득점 선두에 올라있다. 최근 4경기 연속골로 팀의 무실점 승리를 이끈 데다, 지난달 30일 광주전만 빼곤 매 경기 득점해 팬들에게 ‘골무원(골+공무원)’이란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4일 울산 동구의 울산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주니오는 “장신이라 헤더를 잘한다는 건 공격수에게 하나의 옵션일 뿐, 발기술과 위치선정 능력도 중요하다”며 “어디에서 볼이 올지 예측하는 ‘감각’을 향상시키기 위해 훈련에 집중했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저니맨’ 모글리, 울산에 정착하다

주니오는 브라질 아마존 강 연안 도시인 마나우스에서 성장했다. 마나우스는 큰 도시였지만, 조금만 차나 보트를 타고 나가면 악어를 비롯한 각종 동물들이 서식하는 정글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디즈니 ‘정글북’ 주인공 모글리의 삶 같았다. 그런 자연환경 속 7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난 주니오는 변호사였던 아버지, 6명의 형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볼을 차며 다른 브라질 아이들처럼 축구 선수를 꿈꾸기 시작했다.

기회는 20세 시절이던 2006년 찾아왔다. 중소 팀인 나시오날 FC 소속으로 상파울루에서 열리는 큰 규모의 축구대회에 나가 1부리그 소속 아틀레티코 미네이루를 상대로 2골을 넣었다. 팀은 2대 3으로 패했지만 주니오를 좋게 본 미네이루는 바로 주니오를 영입하게 된다. 빛을 보지 못한 친형들의 꿈을 막내 주니오가 이뤄줄 걸로 보였다.

이후 길고 긴 ‘저니맨’ 생활이 시작됐다. 공식 1경기 이상 뛴 구단만 5개국(한국 브라질 스위스 벨기에 태국) 18개 팀. 그 중 울산을 제외하곤 30경기 이상 뛴 팀이 없다. 주니오는 “가족의 기대가 컸지만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자주 팀을 옮겨다니는 게 축구선수로서 정말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인간 주니오’는 그 과정에서 성장했고, 팬들의 사랑이 남다른 울산에서 꽃을 피웠다. 그는 울산에서 벌써 3시즌을 보내며 93경기 58골 10도움을 올렸다. 부인과 두 딸 안나(8) 이사벨라(2)도 안정된 주니오 덕에 행복한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

나이에 대한 의구심, 성적으로 지우다

사실 올 시즌을 앞두고 주니오의 적지 않은 나이에 의구심도 있었다. 계약 기간도 올해까지라 울산과 K리그2 구단 간 주니오의 이적이 추진된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주니오가 더 굳센 의지로 골을 넣는 계기가 됐다. 그는 “힘들기도 했지만 프로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아직 높은 레벨에서 뛸 수 있단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기 위해 훈련을 더 많이 했다. 매년 발전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울산은 2018년 3위를 했다. 지난 시즌엔 선두를 질주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포항에 1대 4로 패하면서 단 1득점 차로 전북에 이은 준우승에 그쳤다. 주니오도 K리그 첫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다. 올 시즌은 다르다. 울산은 포항전에서 4대 0 승리를 거두며 지난 시즌 패배를 되갚았고, K리그 최다 득점(19골) 최소 실점(4실점) 무패 행진(6승2무)으로 1위 전북에 단 1점 뒤져있다. 주니오는 “포항전에는 경기 직전 선수들 눈빛부터가 달랐기에 되갚을 수 있었다”며 “올해는 모든 선수들이 지는 걸 받아들이지 않는 멘털을 유지하고 있어 (28일 맞붙는) 전북을 비롯한 상대 팀들이 우릴 이기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징야와 이동국, 태극마크와 이청용

K리그 영남권 팀에서 뛰는 브라질 선수들은 ‘향우회’처럼 뭉친다. 주니오를 포함해 에드가 세징야(이상 대구) 호물로(부산) 에델(제주) 등이 멤버로, 머나먼 땅에서 고향 음식을 즐기고 서로 돕는다. 하지만 그런 주니오도 세징야가 최근 한 언론을 통해 귀화 의사를 밝힌 건 모르고 있었다. 브라질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주니오는 웃으며 “세징야는 의심할 여지없이 대단한 선수이고 좋은 사람”이라며 “태극마크를 다는 게 그를 행복하게 한다면 난 동의한다”고 말했다.

41세의 나이에 여전히 4골을 넣고 있는 이동국(전북)처럼 40대가 돼도 지금처럼 골을 넣을 수 있는지 묻자 주니오는 “이동국은 많은 선수들에게 하나의 예시”라며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해 훈련하고 있고, 당연히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40대까지 뛴다면 귀화할 생각 없느냐’고 물었다.

“지금까지 받은 많은 사랑을 돌려드릴 수 있어 한국 대표팀에서 뛰면 당연히 좋겠죠. 하지만 이미 좋은 선수들이 워낙 많아서, 대표팀에 세징야나 저같은 외국인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진 않을 거에요.” 그러면서 예로 든 선수가 올 시즌 함께 뛰게 된 이청용. 주니오는 “이청용은 기술도 좋은데 멘털까지 완벽해 최고의 선수가 될 수밖에 없다”며 “필드에선 리더고, K리그에선 최고 선수”라고 칭찬했다.

조용한 정글에서 성장한 만큼 평온하고 상냥한 성격을 지닌 주니오는 인터뷰 말미에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지금은 골무원이면 충분해요. 쭉 골무원으로 불리고 싶네요.”

울산=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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