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포스트 코로나는 없다”



‘머지않아 지나가겠지’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던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이 초기에 무섭게 확산하고 있을 때 일부 선각자들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위기가 지난 뒤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있을 세계에 대해 어떻게 대비할 것인지 미리 생각해둬야 한다고 경종을 울렸다. 요즘 ‘포스트 코로나’나 ‘새로운 일상’ 같은 표현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러한 통찰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달라진 우리의 처지에 관해 정곡을 찌르는 진단을 최근에 듣게 됐는데 그것은 ‘포스트 코로나는 없다’는 말이었다. 의사로 진료도 하면서 의료행정 전반에도 관여하며 국내외 의학 동향에 대해 정통한 전문가로부터 들은 이 표현은 듣는 순간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포스트 코로나와 같이 ‘포스트’로 시작하는 표현들이 많이 있다. 대개 중요한 사건이나 동향이 있고 나서 그 이후 달라진 상황을 표현하는 용어들이다. 대표적으로 post-modern(근대 이후의), post-colonial(식민주의 이후의), post-bellum(남북전쟁 이후의) 등이 있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이제는 그 중요한 사건의 영향권에서 벗어났고, 그 사건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두면서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교훈 삼아 한 단계 진보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이다. 이런 맥락에서 포스트 코로나라는 표현이 적절한지 의구심이 든다. 과연 인류는 코로나 사태를 완전히 극복하고 그것을 지나간 과거의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우리는 ‘위기 이후’를 말할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가 참고할 만한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post-lapsarian(타락 이후의)이라는 용어다. 이는 성서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한 이후의 세계를 가리킨다. 타락 이후의 세계는 타락의 효과가 약화되거나 극복된 세계가 아니고 점점 더 심화되는 세계다. 타락이 극복된 세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다. 그렇지만 구원의 완전한 실현은 종말에 가서야 이뤄진다. 아담의 후손은 타락 이전의 낙원에 관한 기억과 예수를 통해 약속된 새하늘과 새땅의 희망을 마음에 품고 살지만 양발은 여전히 타락한 세상에 붙이고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포스트 코로나는 타락 이후의 상황에 비견할 만하다. 포스트(이후)라는 접두어가 의미하는 방식이 그렇고, 사건의 엄중함이 초래하는 변화의 규모가 그렇다. 우리가 이전에 익숙했던 면대면의 생활방식은 잃어버린 낙원의 추억이 될 수도 있다. 수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열광하는 콘서트나 운동 경기는 역사의 끝에서나 이뤄질 희망적 상징으로만 남을 수도 있다. 따라서 ‘포스트 코로나는 없다’라는 말이 사태를 더 잘 표현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인류의 미래에 비관만 할 수는 없다. 어차피 코로나 사태는 타락 사태의 한 부분이고, 기독교 신앙에 의하면 하나님은 타락을 극복할 수 있는 계획을 이미 마련해 놓고 우리의 참여를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라인홀드 니버의 평온을 위한 기도는 코로나 시대를 사는 현대인에게 현명한 지침을 준다. 하나님,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또한 그 차이를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죄로 물든 세상을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가 아니고 예수님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옵시며, 당신의 뜻에 순종할 때 당신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것을 믿게 하소서.

이대성 연세대 교목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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