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수-이종은] “다름 속 더불어 가는 동행, 연출할 수 없는 감동이죠”

이종은 감독이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제이리미디어 사무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를 소개하고 있다. 이 작품은 서대문구 필름포럼에서 2일 개막하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상영된다. 강민석 선임기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촬영한 영화의 한 장면. 이종은 감독 제공


“혼자서는 도저히 낯선 길은 갈 수 없는 현실과, 또 ‘세상은 혼자 사는 게 아니구나, 더불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일 수밖에 없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했어, 이모는.”

이종은(49)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에서 주인공 재한(50)이 산티아고 순례길의 동행자 다희(17)에게 건네는 말이다. 시각장애 무용가인 재한과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는 다희가 함께 걷는 순례길은 전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다.

‘다름 속 동행’은 이 감독의 다른 작품 ‘시인 할매’에서도 볼 수 있는 핵심 메시지다.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후에야 글을 배운 할매들, 순례길의 끝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플라멩코 추기를 꿈꾸는 여성 시각장애인, 미래를 고민하는 대안학교 학생까지 이 감독은 비주류의 삶을 따뜻하게 조망하며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2일 개막하는 서울국제사랑영화제에서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를 선보이는 이 감독을 지난 27일 서울 양천구 제이리미디어 사무실에서 만났다.

이 감독은 두 사람의 순례길 동행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함께하는 길’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처음 만나는 이들이 ‘시각’과 ‘경험’이라는 서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관계라는 게 그렇게 일방적이고 단순하지 않았다”며 “시각장애인이지만 누군가의 손이 아닌 자신의 흰 지팡이에 의지해 걸어가는 재한과 그런 그의 공간을 존중하며 함께 걷는 다희의 관계가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또 다른 묘미는 순례길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감독은 드론 촬영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순례길을 찍었다. 크리스천으로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순례길은 걷는 것 자체가 기도가 되는 길이라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제 영화가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될 수 있는 통로가 되기를 기도하며 순례길을 함께 걷고 찍었습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동안 재한 다희와 함께 순례길을 걷는 느낌을 받기를 바랐죠.”

‘시인 할매’에 이어 연달아 다큐멘터리 영화를 개봉한 이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매력으로 불확실성을 꼽았다. 잘 짜인 플롯이 아닌 실제 인물의 감정과 예고되지 않은 상황을 좇는 과정에서 의외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산티아고의 흰 지팡이’에 재한이 다희를 먼저 보내고 혼자 걷는 장면이 있어요. 먼저 가던 다희가 돌을 모아 바닥에 ‘화이팅’이라는 글자를 남기는데, 시각장애인인 재한이 우연히 그 글자를 발견하죠. 손으로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는 다희가 썼다는 걸 알게 돼요. 연출은 전혀 없었어요. 다큐멘터리 연출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PD’(하나님 PD)라는 우스갯소리가 괜히 있는 게 아니에요.”

그의 작품은 비주류이자 전혀 다른 이들의 동행하는 삶을 담았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시인 할매’는 전남 곡성 심심산골에서 학교에 다니지 못한 할머니들과 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김선자(50) 길작은도서관 관장의 사계절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는 “할머니들과 김 관장, 재한과 다희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더불어 사는 삶’의 한 모델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이 감독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마 25:45)이라는 성경 구절을 언급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함께 살아가는 것의 중요성을 말했다.

“김 관장은 자신의 달란트로 아무런 대가 없이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쳐요. 지역 교회의 사모이기도 한 그가 보여주는 헌신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지 잘 보여주죠.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을 섬기는 것만큼 이웃을 섬기며 어려운 이에게 물 한잔 건네는 삶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름에 감사하는 기도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기도를 하면 어떨까요.”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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