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엄 열매’] 열매로 허기를 채우니 탕자에겐 궁핍 요한에겐 청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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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향’,1669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헤르미타주 미술관 소장. 화가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돌아보면서 회개하며 그린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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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을 포함해 키프로스 터키 등 지중해 지역에서 자라는 쥐엄나무는 올리브나무처럼 이스라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한국에서 자생하는 주엽나무와 열매의 생김새가 비슷해 같은 식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서로 다른 식물이다. 쥐엄나무의 열매는 히브리어로 ‘하루브’ 영어로는 ‘케롭(carob)’이라 한다. 열매는 30㎝ 정도 길이의 콩꼬투리 속에 동글납작한 모양으로 들어있다. 성서 시대 쥐엄 열매는 소 돼지 말의 사료였으나 가난한 사람들이 보릿고개를 버틸 수 있는 최후의 식량이었다.

가난과 청빈의 상징

성경에서 쥐엄나무의 열매는 ‘가난과 궁핍’ ‘검소와 청빈’의 상징으로 기록됐다. 쥐엄 열매가 성경에 직접 언급된 것은 “저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눅 15:16) 한 구절이다. 예수님의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내용이다.

예수님은 탕자의 비참함을 쥐엄 열매를 통해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눅 15:11~16)

둘째 아들이 간 먼 나라는 어디였을까?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곳은 분명 아니다. 그들에게 돼지사육은 법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 유대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주검을 만지지도 않는 관습이 있었다.(레 11:7~8) 돼지를 키운다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었고,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뒷받침한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조차 주는 사람이 없는, 그때서야 고향의 ‘아버지 집’을 떠올렸다. 쥐엄 열매는 탕자가 ‘더 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라는 생각이 들게 한 열매였다.

랍비 잠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쥐엄 열매를 먹게 되는 날 그들은 뉘우칠 것이다”란 말이 있다. 쥐엄 열매를 먹을 정도로 궁핍한 상황과 고난을 겪을 때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흉년을 계획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깊은 웅덩이에 빠졌을 때, 쥐엄 열매조차 얻을 수 없을 때 ‘지금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방인의 도시에서 이방인을 위한 일을 하며, 영적으로 주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탕자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으로 돌아간다’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 기독교 영성가 헨리 나우웬은 저서 ‘탕자의 귀향’에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라는 자아상을 단단히 붙들고 고향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는 삶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선하고 고통스럽기도 한 일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그 여정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는 참을성과 용기를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쥐엄 열매의 반전

탕자가 먹으려던 쥐엄 열매는 세례 요한이 광야의 시간을 견디게 한 열매였다. 성경은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두르고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고 기록한다. “이 요한은 약대 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 3:4)

일부 성서학자들은 여기서 메뚜기는 곤충 메뚜기가 아니라 쥐엄 열매였다고 말한다. 당시 유대광야에는 메뚜기가 음식으로 사용될 만큼 흔하지 않고 오히려 쥐엄 열매로 해석할 수 있는 여러 배경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쥐엄 열매의 히브리어 ‘하루브’가 메뚜기 ‘하가브’와 혼동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쥐엄나무의 영어명이 ‘Locust tree’(메뚜기 나무)인 것도 우연으로만 넘길 수 없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단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쥐엄 열매를 ‘세례요한의 빵’(St. John's bread)으로 불렀다는 전승이다. 실제로 쥐엄 열매는 말려서 보관할 수 있고 당분과 단백질이 많아 광야에서의 은둔생활에 적합한 양식이다.

쥐엄 열매는 콩꼬투리 모양으로 주렁주렁 열린다. 껍데기는 딱딱해도 씹으면 달콤하다. 꼬투리에는 5~15개의 딱딱한 갈색 씨가 들어 있다. 무게는 대략 0.2g으로 유대인들이 저울추로도 사용했다. 당시 한 세켈은 스무 게라였고 한 게라는 0.2g이었다.(출 30:13) 다이아몬드 무게 단위인 1캐럿(Carat)도 0.2g이다. 캐럿의 어원은 쥐엄나무 즉 캐롭(Carob)에서 유래됐다. 가난의 상징이었던 쥐엄 열매 캐롭이 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무게 단위의 어원이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또 쥐엄 열매는 하나님께 불순종하면 쥐엄 열매를 먹게 된다는 경고를 담고 있다. 구약성경 이사야에 나오는 ‘칼’이 ‘쥐엄 나무’라는 전승도 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켜지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사 1:19~20) 이스라엘 선교사를 지낸 류모세 목사는 저서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에서 ‘거역하면 칼에 삼키운다’는 말에서 ‘칼’은 ‘쥐엄 열매’를 가리키는데 이것은 두 단어가 히브리어에서 ‘헤레브’(칼)와 ‘하루브’(쥐엄 열매)로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쥐엄 열매는 반전의 열매이다. 쥐엄 열매는 탕자에게 가난과 궁핍의 상징이었지만, 세례 요한에겐 검소와 청빈의 상징이었다. 쥐엄 열매는 돼지에게 주린 배를 채워주는 사료였지만, 탕자에겐 아버지가 계시는 고향 집을 떠올리는 회복의 열매였다.

이지현 뉴콘텐츠부장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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