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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다 코로나 퍼뜨린 장본인!” 루머에 악몽이 된 삶



‘미국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중국에 퍼뜨렸다’는 중국발 가짜뉴스에 한 미국인 여성의 삶이 지옥으로 떨어졌다.

미 CNN방송은 27일(현지시간) ‘코로나바이러스 미국 전파설’ 속에서 최초 전파자로 지목된 마트제 베나시(53·사진)를 단독 인터뷰했다. 베나시는 지금까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적도, 의심 증상을 보인 적도 없었으나 바이러스 최초 유포자로 지목되면서 살해 위협까지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일 악몽을 꾸다 깨어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며 “나를 괴롭히는 일을 중단해 달라”고 호소했다.

터무니없는 음모론이 퍼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이는 미국의 유튜버였다. 10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 조지 웹은 평소에도 가짜뉴스를 쏟아내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는 지난달 유튜브 방송에서 베나시를 특정해 그가 중국 우한에 코로나바이러스를 퍼뜨린 장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버지니아주에 위치한 육군기지 포트 벨보어에서 일하는 군무원인 베나시가 지난해 10월 우한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출전한 것이 화근이 됐다.

수백명의 미군 병사가 당시 대회에 참가했지만 그중 베나시가 음모론자들의 표적이 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웹은 이탈리아의 유명 DJ 베니 베나시가 코로나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군무원 베나시와 공모해 세계 전역을 코로나19에 감염시키려 했다는 황당한 주장을 제기했다. 베나시의 이탈리아 성씨가 음모론자들의 눈길을 끈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코로나 팬데믹의 발원지라는 꼬리표를 떼어내려 애쓰던 중국 당국은 이 가짜뉴스를 놓치지 않았다. 중국 정부를 대변하는 관영 언론들은 웹의 음모론을 번역해 앞다퉈 보도했다. 관영지 환구시보는 웹을 탐사기자로 소개하며 “미 당국은 지난해 10월 세계군인체육대회 출전을 위해 우한에 왔던 미군 관계자들의 건강 및 감염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관영 언론들이 중국어로 재가공한 가짜뉴스는 웨이보, 위챗, 시과 등 중국 소셜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갔다. ‘코로나19는 생물학 무기며, 미국이 우한에 최초 퍼뜨렸다’는 주장까지 공공연히 나왔다.

중국 정부도 음모론을 퍼트리는 데 가세했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12일 트위터에 “우한에 코로나19를 가져온 것은 미군일지도 모른다”며 “미국에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감염된 것이냐. 미 정부는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코로나19를 둘러싼 국가 차원의 여론전 속에 베나시 가족의 평범한 일상은 무너졌다. 베나시의 신상정보는 낱낱이 온라인에 유출됐다. 집주소는 물론이고 두 아이를 비롯한 가족관계 정보까지 떠돌았다. 살해 협박이 담긴 편지들이 집 앞에 쌓이기도 했다. 베나시 가족은 확대·재생산되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해 경찰과 변호사 등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답변뿐이었다.

베나시는 “앞으로의 삶은 결코 예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라며 “구글에서 내 이름을 검색하면 코로나19 최초 감염자라는 내용이 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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