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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박혜진의 읽는 사이] 지혜를 묶어 책으로… 독자 이끄는 ‘편집의 마술’

으레 출판사 편집자라고 하면 빨간 펜을 들고 오자나 탈자를 고치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이 편집자가 하는 일의 전부는 아니다. 미국 출판계 편집자들의 삶이 담긴 ‘편집가가 하는 일’을 읽으면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픽사베이




지난주 소개된 책 ‘배움의 발견’이 말하는 바를 범박하고 상투적으로 요약하자면 ‘배움은 끝이 없다’ 정도일 듯하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서 다 아는 이야기라 치부할 수 있지만, 모두 다 아는 그 이야기를 자신만의 경험과 언어에 녹여 낸 책은 바로 그 이유로 훌륭하다.

타인의 앎을 내 것으로 만드는 가장 오래되고 정통한 방법이 바로 ‘읽기’다. 최근에는 갖가지 영상 매체에 그 지위를 박탈당한 듯 보이지만, 아직까지 책은 배움과 가르침의 주요한 수단이다. ‘배움의 발견’을 읽은 이는 저자인 타라 웨스트오버의 삶과 앎을 체득할 수 있다. 소설책을 읽은 사람은 타인의 경험과 감각을 얻어 내고, 교과서를 잘 읽은 이는 학교에서 가르치는 지식을 얻는다. 자기계발서는 물론이고, 전자제품 사용설명서, 생명보험증권 같은 것도 나름의 꼴을 갖춘 책의 형태로, 지식과 경험, 즐거움 등을 전달한다. 우리는 그것을 읽음으로써 무언가를 배운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글이 책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책을 좋은 책이라 말하기 어려움은 물론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지식 전달자인 책은 늘 ‘편집자’의 수고를 거쳐 완성되었다. 정갈하고 효과적인 편집은 많은 독자를 배움의 발견으로 이끈다. 난잡하고 기준 없는 편집은 표지 문구에서부터 책의 흠집을 발견하게 만든다. ‘편집가가 하는 일’은 전자를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고 있을 편집자에 대한 책이다. 그보다 정확하게는 도서 편집자가 하는 일에 관한 책이다. 그보다 자세하게는 ‘도서 편집의 세계’를 주제로 묶어 낸 영미권 편집자의 자기 고백적이면서 놀랍도록 실용적인 산문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다.

출간과 동시에 우리나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잠재 독자군을 지닌 영어권 출판사는 우리와 다르리라 생각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은 어디든 비슷하고 출판 편집도 그 명제에 속해 있어 놀라웠다. 많은 이들이 편집자를 두고 맞춤법과 띄어쓰기의 오류를 신속 정확하게 잡아내는 문장 수리공으로 생각하지만, ‘편집가가 하는 일’에 의하면 편집자는 책의 부분과 전체를 관장하고 관여한다.

다음과 같은 것이 모두 편집자가 하는 일이다. 원고를 검토하고 발굴한다. 확보한 원고의 경쟁력과 우수성을 홍보하여 회사 예산을 따낸다. 작가와 긴밀히 소통하여 텍스트를 개발한다. 완성된 원고에 보완점이나 다른 접근법을 찾아 작가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최종적으로 입수된 원고를 행 단위로 훑어보며 텍스트 전반에 대한 코멘트를 한다. 책의 얼굴이 되는 표지를 디자이너와 함께 진행하고 책날개와 뒤표지의 문구를 작성한다. 발행된 책의 장점을 극대화한 언어로 사내 마케터의 마음을 얻는다. 갖가지 합법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많은 수의 독자에게 훌륭한 책을 가져다준다. 그 외, 기타 등등, 이것저것, 이모저모, 없는 업무를 제외한 모든 것을 한다.

이 책의 편저자인 피터 지나는 ‘감사의 말’에서 “지금까지 나는 운 좋게도 너그러운 멘토 몇 사람을 만났다”고 말한다. 뉴욕 마천루의 사무실, 출판 에이전트와 출판 편집자와의 흥미로운 밀고 당기기, 이따금 등장하는 세계적 작가와의 협업 경험, 대형 출판사의 철저한 분업 등 책에서 밝힌 출판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괜한 부러움이 몇 번 스쳤지만, 감사의 말에서 밝힌 저 담담한 문장만큼은 결단코 아니었다.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다는 대한민국 출판인지라, 작금의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되레 고즈넉해 보일 지경이다. 언제나 위기였기에 출판이 무엇인지, 편집자가 수행하는 일의 성격이 무엇인지 차분히 돌아볼 기회가 희소했지 싶다. 본인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 채, 앞에서 해왔던 대로 혹은 시스템이 돌아가는 대로 심지어 될 대로 하는 일이란 얼마나 재미없을 것인가. 그렇게 하지 않기 위해 출판의 세계로 어렵게 진입했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 버릴 때가 있다. 아무렇게나 되어 버리기 일쑤인 마음을 이 책으로 다잡는다. 운 좋게도 너그러운 멘토를 만난 것 같다. 운 나쁘게도(?) 그들은 책 속에 있지만.

서효인 시인·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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