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온의 소리] 화음을 위한 조건



그래도 봄은 봄이다. 인간이 만든 대부분 제도와 기관이 멈춘 팬데믹(대유행) 상황에서도 자연은 성실하게 꽃망울을 틔우고 화사하게 자태를 뽐낸다. 벌써 5주 차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면서 아무도 눈 맞춰주는 이 없는 빈 연구실에서 혼자 떠들고 있자니 너무 기운이 빠져 밖으로 나왔다. 아, 물론 사람이 많은 곳으로 나간 무개념 외출은 아니었다. 1월 중순부터 ‘사회적 거리’를 염두에 두다 보니 이젠 멀찍이 동선을 잡는 게 제법 익숙해졌다. 이도 슬프긴 하다. 언제부터 우리가 2m 간격을 ‘덕목’의 수준으로 엄수하게 됐다고, 이게 또 익숙해지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학교 연구실 뒤쪽 나지막한 산을 올랐다. 개나리와 진달래가 한창이다. 노란색과 분홍색, 아주 어린 시절부터 궁금했던 질문이 하나 있다. 저 둘을 나란히 심을 생각은 누가 먼저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더 엉뚱한지도 모르겠지만, 너무나 획일적으로 어디를 가나 개나리 옆에 진달래가 심겨 있는 것이 신기했다. 마치 전국 관공서에다 개나리 옆에 진달래를 심으라고 행정명령을 내린 것처럼 예외가 없다. 꽃 피는 시기가 비슷해 그랬을 수도 있겠다. 혹은 내가 모르는 엄청난 역사적 사연이 있으려나. 하지만 놀라운 것은 자연에서는 저 둘이 참 잘 어울린다는 거다. 튀는 색깔의 어떤 옷도 소화하는 대단한 모델이라 해도 노란 윗옷에 핑크 바지를 입은 사람을 상상하기 어려운데, 조화롭기 어려운 저 두 색깔이 자연에서는 제법 어우러진다.

문득 조화로움의 조건은 무엇일까, 생각이 널을 뛰며 끝을 모르고 점프를 한다. 많은 시청자에게 공감을 얻었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 공효진이 종영 후 한 매체에서 인터뷰한 내용이 연결됐다. 늘 성공적인 결과를 얻는 비결을 묻는 기자에게 그녀가 답했다. “저는 화음을 잘 넣는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정확히 계산하고 준비하는 배우들은 상상했던 것과 다른 상대방의 대사를 들었을 때 놀라기도 하고, 그래서 준비했던 걸 부수고 새로 쌓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도 해요.” 그런데 자신은 그렇지 않단다. 대사도 완벽하게 외우기보다는 기억하는 정도로 임하는데 이유인즉 그래야 상대방의 대사를 현장에서 집중해서 듣게 되고 그에 맞는 리액션을 할 수 있다는 거다. 우연히 읽은 기사에 깊은 공감을 했다.

실은 답안을 쓰는 요령도 그러하다. 시험 때가 되면 학생들에게 늘 들려주는 팁이다. 인문학 시험에는 주관식 서술형이 많은데, 나는 절대로 예상 문제 ‘따위’를 미리 정해놓고 기승전결 완벽한 답안을 만들어 달달 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오히려 그동안 배운 것들을 곱씹으며 그저 머리에 넣고 오라고 말이다. 그래야 질문의 방향이나 범위가 예상과 다를 때 준비해온 것을 ‘부수고 새로 쌓는 데’ 시간이 덜 걸린다고.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고 우리의 일상이 멈춘 지 두 달이 훌쩍 넘어가는 이 시점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나 치밀하게 짜인 스케줄과 동선, 빈틈없는 원칙과 규율을 갖고 모두가 획일적으로 살아온 까닭에 바이러스의 공격에 이렇게나 치명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또 강제적 멈춤을 이렇게나 힘들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연과도 이웃과도 우리가 조화로울 방법은 어쩌면 자기만의 색깔, 자기만의 시간, 자기만의 속도를 갖되 옆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고 평화로이(그리고 적당한 거리에서) 공존하는 게 아닐는지. “너도 노란색이 되어라” “너는 왜 핑크가 아니냐” 적대하고 혐오했다면 개나리와 진달래는 서로의 곁을 지킬 수 없지 않은가. 자연은 하나님의 법을 담고 있어서, 탐욕스러운 인간에게 늘 깊은 성찰을 준다.

백소영(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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