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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코로나 식당



지방자치단체는 관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면 동선을 공개한다. 대략적인 집 주소와 최근 들른 곳, 만난 사람, 이동 수단 등이 공개 대상이다.

확진자가 머문 장소에 대해 우리는 결코 관대하지 않다. 바이러스가 남아 있지 않다는 설명에도 찜찜함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식당의 경우는 ‘코로나19’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치명상을 입는다. 대형 유통업체 등과 달리 동네 식당은 대안이 널려 있다. 메뉴를 바꾸면 되고, 굳이 그 메뉴를 원하더라도 다른 식당이 얼마든지 있다. 이 때문에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은 방역을 위한 1~2일 잠정 폐쇄에 그치지 않고 여러 주일 문을 닫기 일쑤고 아예 폐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확진자 동선을 공개하는 것은 그 시각,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새로운 전파자가 되지 않도록 경고하기 위한 목적이다. 하지만 일단 도마에 오른 식당은 ‘주홍글씨’가 각인된 채 대중으로부터 소외된다. 소설 ‘주홍글씨’는 17세기 미국 신대륙이 배경이다. 엄격한 당시 청교도 윤리의식은 불륜을 저지른 여성과 아이를 심판대에 올려 구경거리로 만들고, 간통을 의미하는 글자를 평생 가슴에 새기고 다니도록 심판한다. 그러나 ‘코로나 식당’은 죄를 지은 게 아니다. 그저 다른 식당보다 하나라도 더 나은 데가 있어 확진자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불이익은 가혹하다.

일반인이 느끼는 불편함은 사실에 입각한 게 아니다. 감염에 노출된 시설에 대해서는 방역 전문 인력이 투입돼 승인받은 소독제로 철저히 환경 소독을 실시한다. 질병관리본부 지침에 따르면 소독 직후 바이러스는 사멸한다. 보통 방역 다음 날까지 폐쇄한 뒤 재개방하라고 권고하지만 이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소독제의 독성 때문이다. 여러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편견이 잘 개선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태 초기 ‘쌓인 식재료 다 먹어주기 운동’에서 발현됐던 시민정신에 결국 기대야만 미신과 흡사한 선입견을 몰아낼 수 있는 것인지 마음이 무겁다.

김의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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