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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불면증인 줄 알았는데… 하지불안증후군이라네요





다리 쥐나고 간지러워… 20명 중 한명꼴 숙면 못해
도파민·철분 결핍 등 원인… 방치 땐 고혈압·자해 위험
햇볕 쬐고 술·커피 삼가야


김모(48)씨는 요즘 저녁이 무섭다. 잠을 자기가 어렵고 힘들게 잠이 들어도 자꾸 깨는 등 불면 증상이 심해졌기 때문이다. 잠 못드는 날이 늘면서 낮에 피로하고 조는 일이 많아지자 수면클리닉을 찾았다. 수면다원검사 결과 놀랍게도 불면증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하지불안증후군’을 확진받았다.

매번 자려고 누우면 다리에 쥐가 나고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간지러움 증상을 느꼈다. 또 다리 사이에 베개를 끼고 자고 겨울인데도 발을 이불 밖으로 빼거나 차가운 벽 쪽으로 붙이고 자곤 했는데, 이런 잠버릇이 하지불안증후군 때문이고 숙면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면검사 과정에 촬영된 비디오를 보니 자는 중간 중간 계속 다리를 움직이고 주무르는 이상 행동을 하는 것도 관찰됐다.

김씨와 같은 이유로 충분한 잠을 못자는 한국인은 20명 중 1명꼴이다. 대한수면의학회가 2018년 21~69세 남녀 5000명을 조사한 결과 이런 하지불안증후군 국내 유병률은 5.4%로 나타났다.

문제는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상당수가 수면장애인 줄 모르고 디스크(추간판탈출증)나 하지정맥류(다리 혈류질환)로 오인해 정형외과 혹은 재활의학과를 전전하기 십상이다. 불면증 등 다른 수면병인 줄 잘못 알고 있기도 하다. 게 중에는 일시적인 증상으로 생각해 그냥 참고 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낮엔 괜찮다가 밤에 하체에 불편한 증상을 느껴 숙면을 취하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눕거나 앉아있으면 다리를 움직이고픈 충동이 강하게 들고 걷거나 움직이면 괜찮아진다. 극장이나 비행기 등에서 오래 앉아있기 힘들다. 또 척추질환이나 하지정맥류는 운동하거나 무리하면 증상이 더 심해지지만 하지불안증후군은 운동하거나 움직이면 오히려 나아지고 가만 있거나 쉬면 힘들어진다.

숙면 어려운 이유 찾았다

최근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숙면이 어려웠던 원인을 밝혀낸 연구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정기영 교수팀은 하지불안증후군과 정상인 각 15명의 뇌파를 수면검사를 통해 분석했다. 수면을 조절하는 중요한 기전은 뇌의 ‘수면 방추’와 ‘느린 진동’이다. 수면 방추는 외부 자극에 각성이 생기지 않도록 감각 정보를 조절해 수면에 이르게 한다. 주파수 1헤르츠(㎐) 미만의 느린 진동은 깊은 잠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그런데 분석 결과 정상인의 수면 방추는 1분 동안 평균 6.01회, 느린 진동은 2.91회 나타난 반면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각각 4.25회, 2.18회에 그쳤다.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수면 방추가 약 30%, 느린 진동은 25% 정도 감소한 걸로 나타난 것. 특히 수면 방추의 파워가 눈에 띄게 줄었고 느린 진동과 만나는 연결성도 정상인과 차이를 보였다는 게 연구진 설명이다.

정 교수는 10일 “뇌의 시상과 대뇌피질에서 각각 만들어지는 수면 방추와 느린 진동이 균형을 잘 맞춰야 숙면에 이를 수 있다”면서 “뇌파 분석 결과 정상인은 느린 진동이 나타나는 곡선 최고점에 수면 방추가 맞물리는데, 하지불안증후군 환자는 조금씩 엇나가면서 균형이 흐트러졌다”고 설명했다. 즉 하지불안증후군 환자의 수면 질을 높이려면 수면 방추와 느린 진동의 기능을 높이고 균형을 맞추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하지불안증후군은 방치하면 고혈압 등 2차 질환과 자해·자살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도 있는 만큼 조기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불안증후군의 원인으로는 뇌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 부족, 철분 결핍, 유전적 요인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일찍 발병한 하지불안증후군의 경우 절반 정도에서 유전적 경향을 보인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혈액순환 장애, 신부전, 비타민 미네랄 부족 등과도 관련이 있다. 임신이나 호르몬 변화도 일시적으로 증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철분 결핍은 빈혈 증상이 없더라도 하지불안증후군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킬 수 있다. 서울수면센터 한진규 원장팀 연구에 따르면 철분 결핍으로 하지불안증후군이 나타난 환자들의 평균 저장철(ferritin·세포에 저장된 철) 수치는 0.5ng/㎖였고 혈액내 철분 수치는 42㎍/㎗였다. 각각 정상 기준인 50ng/㎖, 50~170㎍/㎗를 훨씬 밑돌았다.

겨울에 특히 주의

하지불안증후군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선 수면다원검사와 저장철을 측정할 수 있는 혈액검사가 필요하다. 수면다원검사는 잠자는 동안 발생하는 수면장애와 수면의 질을 체크할 수 있다.

한 원장은 “특히 겨울철에 하지불안증후군 같은 수면장애 환자가 급증한다”면서 “추운 날씨로 바깥 활동이 줄고 일조량이 감소해 뇌의 도파민 기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불안증후군은 원인에 따라 철분이 부족할 경우 철분제로 보충해주고, 도파민이 부족할 때는 도파민 제제를 소량 복용하면 빠르게 호전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낮에 햇빛을 많이 쬐는 것도 도움된다. 햇빛을 쬐면서 가벼운 스트레칭이나 체조를 한 뒤 다리 마사지나 족탕으로 다리 피로를 풀어주면 증상 완화에 효과를 볼 수 있다.

평소 하지불안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요인을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우울이나 불안, 너무 과도하거나 부족한 운동, 수면호흡 장애, 약물(감기약, 소화제, 항우울제) 복용 등이 대표적이다. 한 원장은 “알코올, 특히 레드와인을 마시거나 커피 등을 통한 카페인 섭취는 십이지장에서 철분 흡수를 막아 하지불안증후군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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