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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 건강] 부모·형제 중에 위암 환자 있다면… 헬리코박터균 없애라

국립암센터 최일주 교수가 위 내시경 검진을 시행하고 있다. 내시경을 보며 떼낸 위 점막 조직 검사를 통해 헬리코박터균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국립암센터 제공
 
사진은 헬리코박터균의 모습. 국립암센터 제공





국립암센터 최일주 교수팀 규명

식습관 등 따라 가족내 감염 높아… 주로 5세 미만 아동기에 감염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위염 진행… 제균 성공때 위암 발생률 73%↓


위암 환자의 부모나 형제·자매라면 헬리코박터파일로리균 제균 치료를 받고, 제균이 제대로 됐는지 반드시 확인할 필요가 있겠다. 이들 가족의 위 점막에 붙어 사는 헬리코박터균을 없앴더니 위암 발생 위험이 최대 73%까지 줄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 최일주 교수는 위암 환자 가족에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의 위암 예방 효과를 세계 최초로 규명해 권위 있는 의학 학술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NEJM)’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2004~2011년 부모 또는 형제·자매가 위암 환자인 3100명의 가족 가운데 헬리코박터균 양성인 1676명에게 헬리코박터 제균약 또는 위약(가짜약)을 투여했다. 이후 2018년까지 위암 발생 여부를 추적했다.

최장 14.1년의 관찰기간 동안 제균 약을 복용한 832명 가운데 10명(1.2%)에서, 위약 복용자 844명 중 23명(2.7%)에서 위암이 각각 발생했다. 제균약을 먹은 그룹의 위암 발생 위험이 55% 감소한 것이다.

특히 헬리코박터 완전 제균에 성공한 608명 가운데 5명(0.8%)에서, 제균 치료에도 불구하고 지속 감염이 있었던 979명 중 28명(2.9%)에서 위암이 각각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제균에 성공한 경우 위암 발생 위험은 73%나 줄어 단순히 제균약 복용 시보다 위암 예방률이 더 높게 나왔다. 보통 제균약을 먹어도 약 30%는 헬리코박터균이 남아 있어 제균에 실패한다.

2017년 국가암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위암 발생자는 약 3만명으로 전체 암 발생의 13%를 차지해 단연 1위였다. 최 교수는 3일 “위암 고위험군에서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의 위암 예방 효과가 있다는 높은 수준의 근거를 제시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진료 지침에 반영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교수는 암이 위 점막이나 바로 밑에 국한된 조기 위암으로 내시경절제수술(내시경 검사하며 점막층의 암을 살짝 도려냄)을 받은 환자 470명 대상 연구에서 헬리코박터균 제균 치료가 위암 재발을 50%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밝혀내 2018년 NEJM에 발표한 바 있다. 조기 위암 환자는 일반인보다 위암 재발 위험이 20~30배 높다.

16세 이상 절반 감염… 아동기에 옮아

헬리코박터균은 위 점막층에 사는 세균이다. 위나 십이지장궤양, 희귀 위암인 위점막림프종의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주로 5세 미만 아동기에 감염돼 치료하지 않으면 감염이 평생 지속되며 대부분의 감염자에서 만성 위염이 생긴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헬리코박터균 감염을 위암의 1급 발암 요인으로 규정하고 있다.


헬리코박터균은 과거 국내 성인 10명 가운데 6명에서 감염됐을 정도로 흔했으나 사회·경제적 수준과 위생 상태가 좋아지면서 감염률이 점차 줄고 있다. 2015~2016년 기준 만 16세 이상의 감염률은 51.0%로 조사됐다. 최 교수는 “40~65세 일반 건강검진자 대상 연구에서는 15년 전 60%였던 감염률이 근래 45%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위암에 걸릴 확률이 2~3배 높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이 있다고 해서 모두 위암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위암 발생에는 헬리코박터균 감염뿐 아니라 식습관(맵고 짠 음식, 타거나 훈제된 식품 섭취)과 음주, 흡연, 면역 및 유전적 요인 등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균의 주된 감염 경로는 ‘가족 내 감염’으로 추정된다. 한 집에서 부모나 형제·자매가 함께 살면서 식습관, 불량한 위생환경 등을 공유하는 탓이다. 대부분 침이나 구토물, 대변을 통해 옮는다. 지금까지 연구에 의하면 배설물을 통한 감염보다는 구강 대 구강 감염이 더 많으며 특히 ‘모자 감염’(엄마가 음식을 씹어 아이 입에 넣어주는 행위로 감염)의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 여부는 내시경 검진 시 위점막 조직을 떼내 검사하거나 ‘요소 호기 검사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요소 호기 검사는 4시간 금식 상태에서 날숨을 길게 불어 헬리코박터균에 의해 분해된 약 성분을 측정하는 방법이다. 내시경 검사 없이 간단히 할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헬리코박터균 보균자의 대부분은 평생 아무런 증상 없이 살아간다. 일부 감염자들은 급·만성 위염, 소화성 궤양으로 인한 소화불량, 속쓰림 등을 겪을 수 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이 원인인 소화성 궤양과 조기 위암, 위점막림프종이 있는 경우 꼭 제균 치료를 해야 한다.

치료는 1차로 위산 분비를 차단하는 프로톤펌프억제제(PPI)와 두 가지 항생제(아목시실린, 클래리쓰로마이신)로 구성된 표준 요법을 1~2주 시도한다. 아침과 저녁 두 차례 복용한다.

치료율 70% 안팎… 제균 성공 꼭 확인

하지만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방법의 제균 성공률은 70% 안팎에 그친다. 이때는 한 가지 약제를 추가해 2차 치료를 하게 된다. 약 먹고 1~2개월 후 완전 제균이 됐는지 꼭 확인 검사를 받아야 재발을 막을 수 있다.

현재 위·십이지장궤양, 저등급 위점막림프종, 조기 위암 수술을 받은 환자, 특발성 혈소판감소성 자반증(붉은 반점) 환자들의 경우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에 건강보험(본인 부담 30%)이 적용된다.

최 교수는 “진료상 제균이 필요해 환자가 동의했거나 위암 가족력(부모, 형제·자매), 만성 위축성 위염이 있거나 위 용종(선종)으로 내시경 치료를 받은 경우엔 100% 본인부담으로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요소 호기 검사와 항생제 내성 검사에도 건보 적용이 확대됐다. 요소 호기 검사는 제균 후 치료 성공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에만 건보가 적용된다.

다만 내시경 조직검사를 할 경우 출혈 위험이 큰 위·십이지장궤양, 항응고제·항혈전제 복용을 중단할 수 없는 고위험 심뇌혈관질환, 간경화증, 혈액투석 중인 만성 콩팥병, 특발성 혈소판감소성 자반증 환자의 경우 처음 헬리박터균 감염 여부 확인을 위한 요소 호기 검사를 할 때 건보 혜택을 받는다.

최 교수는 “헬리코박터균 치료 후 반드시 제균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위암 예방 효과를 높이는 길”이라고 조언했다. 또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가 위암 환자 가족이 아닌 일반인에서도 위암 예방 효과가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면서 “항생제 사용으로 인한 내성균 발생 우려가 있어 만성 위염 정도만 있는 일반인에게 위암 예방 목적의 헬리코박터 제균 치료는 추천되지 않는다”고 했다.

국립암센터는 국가 암검진 대상인 40세 이상 일반인에서 헬리코박터균 치료의 위암 예방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를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2029년에 완료될 예정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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