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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윰노트] 계약서 읽어보셨어요?



최근 저작권을 3년간 양도한다는 내용의 계약이 주목받고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가 저작물에 갖는 권리로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을 포함하는 저작인격권과 복제권, 전시권, 배포권을 포함하는 저작재산권 등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 가운데 저작재산권은 상속과 양도가 가능하고 사후 70년 동안 유지된다. 윤동주 시의 상업적 이용이 다소 자유로워진 것도 이런 배경이라고 한다. 좋은 저작물을 창작하는 것만큼 그것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여전히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거나 저작권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에 대한 교육이나 의견교환도 비교적 제한적인 편이다. 이번 문제 제기가 반갑고 응원을 보내게 되는 이유다.

비슷한 시기 공정거래위원회 표준계약서에 대한 아쉬운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 있다는 입장이었다. 이를테면 의무는 있지만 위반했을 경우 제재하는 내용이 빠져 있다거나 문제가 생겼을 경우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보호가 어렵다는 지적이었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전 미리 증거를 확보하고 자료를 준비할 수 없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런 허점을 악용하는 사례까지 있다 보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계약은 특정 개인만 겪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는 성인이 되면서 크고 작은 계약과 마주한다. 휴대폰을 구매하거나 보험에 가입할 때, 방을 구할 때, 일할 때도 계약서가 오간다. 하지만 귀찮거나 내용이 너무 많아 제대로 살펴보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계약은 양쪽 모두 의무와 권리에 동의하고 맺은 사회적 약속이면서 법률행위다. 당연히 지켜져야 하고 위반했을 경우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므로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계약에 따른 문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요금을 할인해준다고 해서 사인했는데 알고 보니 카드를 만들고 매달 일정 금액을 써야 하는 조건이었거나 공동주택인 줄 알았는데 근린생활시설이라 대출에 문제가 되었던 경우도 있다.

문제가 생기는 이유는 다양하다.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았거나 일부만 전달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와 표현으로 혼란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익만 부풀리고 의무는 생략한 채 계약서에만 표기하고 불이익이 생길 수 있는 내용은 슬그머니 숨기는 방식도 있다. 위약금이 크지 않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기도 한다. 크지 않다는 말은 개인에 따라 해석하는 방향이 달라 오해를 만들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계약서를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으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기 십상이다.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표현은 반드시 살펴봐야 한다. 예를 들어 보험에서 2대 진단비는 뇌와 심장 쪽 질병을 말한다고 한다. 이를 모르면 해당 질병을 진단받았어도 보험금 수령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일반상해 80% 이상 후유장해나 5대 골절 수술비처럼 내용을 파악할 수 없을 때는 충분히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때때로 불리한 내용을 알고도 계약을 진행하기도 한다. 그동안 계속 그래왔다는 이유나 상대방에게 문제를 제기할 경우 불이익이 예상될 때다. 그러니 공정하지 않은 계약이 애초에 성립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져야겠다.

계약서 내용을 설명해줄 사람은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뿐이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이를 객관적으로 판단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맬 때가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다양한 계약에 대해 충분히 교육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표준계약서나 설명 의무 등 제도적 장치도 계속 강화해야겠다. 얼마 전 근처 아파트의 관리규약이 변경됨에 따라 주민들 의견을 구하는 일이 있었다. 두툼한 관리규약 대신 바뀐 부분만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쉽게 풀이해 전달하니 의견수렴이 수월했다고 한다. 이처럼 내용이 방대할 때는 요약본을 제시하고 해석이 필요한 전문용어나 표현은 쉽게 바꾸는 노력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물론 설명을 건성으로 듣고 계약서를 대충 훑어보는 일도 없어야겠다. 여기에 일방적인 계약이 아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더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불합리한 계약이 당장은 이득을 가져다줄지 몰라도 멀리 보면 신뢰가 깨져 결국 불이익으로 돌아올 것이다. 이제 계약이 갈등의 씨앗이 아닌 서로에게 이득을 주는 역할을 하길 바란다.

전석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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