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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환 목사의 영적 장자권을 회복하라] ‘장자권’은 목회 은퇴 전 하나님이 주신 특별 보너스

이영환 대전 한밭제일장로교회 원로목사가 2018년 12월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에서 열린 목회자 및 지도자 수련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영환 목사


“은퇴 후 더 바쁘고, 더 많이 베풀고, 나누고, 섬긴다.” 2013년 대전 한밭제일장로교회 강단에서 믿음으로 선포했다. 기도하며 무엇인가 주님으로부터 선물을 기대했는데, 아주 놀라운 선물을 주셨다. 장자권이라는 하나님의 특별 보너스였다.

장자권은 뜻밖의 선물이었다. 기도 중 영감을 주셨고 교재를 집필하게끔 인도하셨다. 퍼부어주시는 은혜가 크다 보니 첫 교재를 3일 만에 완성했다. 한밭제일장로교회에서 시범적으로 훈련했다. 반응이 놀라웠다. 교회에 말씀 충만의 열기가 가득했다. 많은 치유와 회복과 표적이 일어났다.

내친김에 2013년 12월 국민일보에 장자권 세미나 광고를 냈다. 1300여명의 목회자들이 몰려왔다. 호응에 힘입어 매년 4차례 목회자 세미나를 열게 됐다. 은퇴 후부턴 1년에 2~3차례 목회자 영성 집회를 개최한다.

특별히 개척교회나 미자립교회 목사님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악수를 청했다. “목사님, 목회를 포기하고 절망하고 있었는데, 장자권 세미나를 듣고 생명의 샘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장자권은 주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정말 선포한 대로 역사하셨다. 심은 대로 은혜를 쏟아 부어주셨다. 믿음으로 선포하고 심은 열매가 그대로 하늘에서 자라고 있었다. 때가 되자 현실에 나타나 많은 목회자에게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게 해 주셨다. 나는 아주 작은 것을 심었는데 하나님께선 풍성한 것으로 안겨 주셨다. 나는 아주 서툰 몸짓으로 섬겼는데 주님께서는 놀라운 응답으로 안겨 주셨다.

‘아, 장자권은 정말 주님께서 쏟아 부어주신 특별한 선물이구나. 하나님은 믿음으로 입을 열고 선포하고 열심히 심은 대로 역사하시는 아주 좋은 분이시다.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다면 목회는 쉽고 가볍고 재미있고 행복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은 세계 속 목양을 선포하게 하셨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지만, 말씀에 순종해 또다시 선포했다. “우리 교회는 세계가 몰려오고 세계를 향해 나가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당시에는 내가 세계를 향해 나갈 수도 없고 세계가 나와 우리교회를 향해 몰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은퇴 후 1년에 20여 차례 선교 현지에서 선교사와 현지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말씀과 기도, 금식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지난해 11월 세미나에는 이스라엘의 목회자 6가구가 와서 참석했다.

그렇게 세계를 향해 선포하며 나아갈 때 일이다. 2014년 어느 날 하나님이 내게 도전을 주셨다. 1960년 예수전도단을 설립한 로렌 커닝햄 목사님을 통해서였다. 어느 집회에 커닝햄 목사님이 강사로 오셨는데 그때 80세가 넘었다고 했다. 유럽에서 방금 오셔서 강단에 서셨다. 연세도 있으신 데다 시차까지 있었을 텐데 힘 있고 선명하게 말씀을 선포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64세였는데, 삼촌뻘인 커닝햄 목사님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다.

‘아, 저분이 팔순이 넘으셨는데 유럽에서 비행기를 타고 방금 오셔서 이렇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파워 있게 말씀을 전한다면, 나라고 못 할 게 없다. 나는 고작 예순넷이다. 앞으로 저분 나이가 되더라도 저렇게 세계를 다니면서 강력한 목회를 하리라.’ 그리고 교회에 와서는 강단에서 곧바로 선포했다.

“제가 이번에 커닝햄 목사님 때문에 도전을 받았습니다. 저도 앞으로 300번 이상 해외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하늘나라에 가겠습니다. 300번 이상 해외에 나가 복음을 전하려면 최소 1년에 20번씩 나간다 쳐도 15년을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선포하고 강단을 내려오자 장로님 한 분이 와서 이렇게 농담을 했다. “아이고, 목사님. 오라고 하는 데가 있어야 가시죠.” “장로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선포했으니까 하나님께서 제 말을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대로 될 것을 믿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선포한 그대로 2017년 은퇴 후 매년 20회 이상 선교지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지금까지 90회 나갔다. 갈 곳도, 오라는 곳도 많다.

여전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학력은 중졸이고 무인가 신학교를 나왔다.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겨워했다. 어르신 몇 명 모아놓고 하는 노인목회가 꿈이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볼품없던 존재를 통해 일하셨다.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선포하자 그 말을 들으시고 말씀대로 정확하게 역사하신 것이다. 그래서 어느 자리에서든지 이렇게 말한다. “믿음은 선포입니다. 인생은 선포입니다. 말을 쉽게 하지 마십시오. 부정적 말을 하지 마십시오.”

누구든지 믿음으로 담대히 선포하고, 그 선포를 이루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 단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까지 인내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이뤄진다.

인생은 선포다. 믿음은 선포다. 믿음으로 선포하라. 간절히 기도하라. 최선을 다하라. 그리고 될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라. 그러면 반드시 이뤄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한다. “목회가 안 된다” “전도가 안 된다” “부흥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거짓말에 더 이상 속지 말자.

▒ 장자권은 이것이다
세상은 음란천국… 자신과의 싸움에서 복종시켜야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 상속자인 장자다. 천국을 상속받을 자인 하나님의 장자가 반드시 기억할 것은 이 땅에서 정복의 권세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복을 주셨다. 그 복의 내용이 무엇인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과 또 땅을 정복하는 것, 그리고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이다.(창 1:28)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특권이다.

하지만 이 특권을 첫 사람인 아담이 빼앗기고 말았다. 옛 뱀인 사탄, 마귀에게 정복을 당하고 만 것이었다. 우리가 정복할 땅은 보이는 이 육지, 지구촌을 넘어 영적인 것에 있다는 사실을 영의 눈을 뜨고 바라봐야 한다. 사람은 어떻게 창조됐는가.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은 두 가지를 사용하셨다. 그것이 무엇인가.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하나님은 분명히 땅의 흙과 하나님이 하늘에서 부어주신 생기를 통해 사람을 만드셨다. 땅의 흙, 우리의 육신은 땅의 흙에서 왔다. 그러므로 반드시 누구든지 땅의 흙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영혼은 하나님께로 왔다. 사람은 육신과 영혼을 함께 지닌 특별한 존재다. 모든 동물에게도 혼이 있어서 생명이 있지만, 그 생명은 영원한 생명이 아니다. 오직 인간의 영만이 영원한 생명이 될 수 있다.

문제는 땅의 흙으로 지어진 육체다.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싸워야 할, 그리고 정복해야 할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우리 육신의 정욕이다.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골 3:5)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그런데 그 지체가 무엇을 가리키는가. 바로 땅에 있는 지체다. 그러면 우리 몸을 죽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죽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죽여야 할 것은 음란이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은 음란천국이다. 인터넷에 음란물이 범람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도 음란물에 노출돼 마음 공간이 더럽고 사악함으로 꽉 찬 시대를 살고 있다.

하나님은 분명히 지체를 죽이라고, 정복하라고 말씀하셨다. 동시에 정욕과 탐심을 우상숭배라고 정의하셨다. 우상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갈 수 없다. 우리가 지금 정복해야 할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 이것들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내 육체의 소욕 가운데 속해 있는 것이다.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른다. 성령과 육체의 소욕은 서로 대치돼 있다.

바울은 자타가 공인하는 하나님의 사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그렇게 무시하고 멸시하고 짓밟았던 그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난 후에 달라졌다. 그가 누려야 될 모든 것들을 다 배설물로 여긴 것이다. 왜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예수가 보배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 그는 평생을 선교하면서 마지막에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를 당했는데, 그가 순교 당할 때까지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지킨 것이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고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6~27)

바울은 달음질의 목표를 선명하게 알았다.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았다.

그에게 싸움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었다. 바울은 대적이 자기 자신의 탐심임을 알았다. 대적이 자기 몸의 정욕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을 복종시키는 이 싸움에 목숨을 걸었고, 그것 때문에 순교자의 영광을 안은 것이다. 자신의 정욕과 싸움에서 그것을 복종시키고, 탐심과 싸움에서 그것을 복종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해야 한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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