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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골든글로브 거머쥔 ‘기생충’



“제시카 외동딸, 일리노이 시카고, 과 선배는 김진모, 그는 네 사촌∼.”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서 나온 일명 ‘제시카 송’이다. 극중 기정(박소담)이 학력을 속이고 과외선생 면접을 보러 간 부잣집의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오빠 기우(최우식)와 함께 6초간 흥얼거린 노래다. 말을 맞추기 위해 자신(제시카)의 허위 프로필을 읊조린 것이다. 관객이라면 이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박힐 수밖에 없다. ‘독도는 우리땅’을 개사해 불러 중독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 개봉 이후 제시카 송은 현지에서도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SNS에 패러디 영상이 확산되고, 온라인 쇼핑몰에선 관련 티셔츠·머그컵까지 등장했다.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 관객이 끊이지 않자 3곳에서 시작한 개봉관은 600여곳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북미 개봉 외국어영화 중 흥행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이 됐다. 전 세계 통틀어 1억3000만 달러(1500억원)에 육박하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지난해 5월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기생충’은 반지하에 사는 가족과 대저택에 사는 가족을 대비시켜 빈부격차와 계급갈등이라는 사회문제를 녹여낸 블랙코미디다. 50개가 넘는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면서 화제의 중심이 됐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호평 일색이었다. “올해 가장 흥미롭고 예측할 수 없는 영화 중 하나” “세계가 공감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는 영화” “공포 풍자 비극을 다양하게 보여주며 계급투쟁에 관련한 날카로운 교훈을 주는 영화” 등의 격찬이 쏟아졌다. 지난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영화’ 3위에 올랐다.

세계 주요 시상식도 휩쓸었다. 영화제 수상을 포함해 50개에 달하는 영화상을 석권했다. 올 들어선 전미비평가협회 연례 시상식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과 각본상을, 호주 아카데미 시상식에선 작품상을 수상했다. 한국 작품 최초로 아카데미와 더불어 미국 양대 영화상인 골든글로브 트로피도 마침내 거머쥐었다. 5일(현지시간) 할리우드 외신기자협회 주관의 제77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건 한국 영화의 쾌거다.

난공불락이었던 할리우드의 벽을 봉준호 사단이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이제 남은 건 다음 달 9일 열리는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이다. ‘기생충’은 국제영화상과 주제가상 2개 부문에 예비후보로 지명됐다. 최종 후보 작품은 13일 발표된다.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향한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박정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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