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해돋이



새해 첫날 아침, 남편과 함께 개를 데리고 산에 올랐다. 해돋이 명소에는 못 가도 동네 산에라도 오르자고 약속했던 터였다. 나는 인터넷으로 해가 뜨는 시간을 확인한 다음 성급히 옷을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아직 어둑해서 산속을 걷는 것이 으스스했다. 어디선가 갑자기 산짐승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개는 나무 위의 청솔모를 보며 짖어댔다. 나는 휴대폰 랜턴으로 길을 비추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정상에 가까워지자 이마에 땀이 솟아났다. 앞쪽에 산을 오르는 노부부가 보였다. 할아버지는 지팡이를 짚고 서서히 산을 오르고 있었다. 앞서가던 할머니가 때때로 멈춰 서서 할아버지를 기다려주었다. 그들은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걷는 속도가 느려서 결국 우리가 그들을 앞지르게 되었다.

정상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가족 단위로 온 사람들부터 홀로 온 청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해돋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부부는 한쪽에 앉아 텀블러에 담아 온 차를 마셨다. 새해의 첫해라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해돋이는 생각보다 실망스러웠다. 날이 흐린 데다 해발 500m도 되지 않는 낮은 산이다 보니 주황빛으로 물드는 장관이 펼쳐지지 않았다. 해는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고 어느 순간 어두운 사위가 조금 더 밝아졌을 뿐이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도 내려가려는데 할머니가 컵에 따른 차를 내밀며 추운데 마시고 가라고 권했다. 우리는 감사하다고 말한 다음 차를 받아 마셨다. 구수한 우롱차였다. 할머니는 결혼한 이후로 남편이 출장 갔던 한 번을 제외하고 새해 첫날에는 늘 함께 산에 올랐다면서 새해 첫날의 해는 매해 확연히 다르다고 했다. “해도 한 해를 살아서 그런 거지.” 할아버지가 옆에서 거들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 다리가 불편해서 내년에는 함께 오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할머니는 내게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을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을 서너 장 찍은 후 노부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부부는 또다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기를 반복하며 산을 내려갔다. 나는 다음 해에도 산에 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해를 산, 올해와는 확연히 다른 다음 해의 해를 보기 위해서.

김의경 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