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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일 땐 더없이 고맙지만… 등 돌리면 한없이 매서운 ‘양날의 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인사하는 모습.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이후 처음으로 윤 총장을 대면한 자리였다. 뉴시스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에 조문 온 임채진 당시 검찰총장. 그는 얼마 뒤 퇴임했다. 뉴시스


2013년 4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모습. 채 총장은 취임 5개월 만에 물러났다. 뉴시스


올해 7월 청와대에서 임명장 수여식을 마치고 함께 걸어가는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검찰총장. 뉴시스


“국민들 사이에 검찰의 변화에 대한 요구가 크고, 그만큼 우리 신임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기대가 높다.”(문재인 대통령)

“헌법과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가짐으로 열심히 해 나가겠다.“(윤 총장)

지난 7월 25일 청와대에서 열린 윤 총장 임명장 수여식. 문 대통령은 두 차례나 “우리 윤 총장”이라 부르면서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똑같은 자세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총장은 “원칙에 입각해서 마음을 비우고 한 발 한 발 걸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이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이 자리에 참석해 윤 총장과 밝은 얼굴로 대화를 나눴다.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말한 문 대통령, ‘헌법과 국민, 원칙’을 말한 윤 총장, 이를 지켜보는 조 전 장관의 모습은 이로부터 얼마 뒤 벌어진, 그러나 당시에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조국 사태’의 복선이었다.

대통령에 칼 겨눌 수 있는 자리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급 공무원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사와 기소 권한을 가진 검찰을 이끌며 대통령에게도 칼날을 겨눌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과거 군사 정권에서 정보기관과 경찰이 갖고 있던 권력은 1987년 민주화 이후 점차 검찰로 넘겨졌다. 그래서 이후 정부마다 정치권력과 검찰권력은 늘 애증 관계에 있었고, 양 꼭대기에 있는 대통령과 검찰총장은 그런 긴장 관계를 드라마틱하게 드러냈다. 검찰총장이 2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자리가 항상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있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힘이 강할 때는 통치 행위에 검찰을 적절히 활용했다. 김영삼정부는 1995년 검찰을 통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하며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섰다. ‘적폐 청산’을 기치로 내건 문재인정부도 출범 초 80%를 넘나드는 지지율 속에 검찰(문무일 전 총장 체제)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줄줄이 구속했다. 정권과 검찰의 뜻이 맞았던 경우다.

대통령이 검찰을 ‘잘 드는 칼’로만 여기고, 검찰총장은 대통령의 뜻에 따라 칼을 휘두르면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관계가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시 이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표적 수사의 대표 사례로 비난받았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 재임 때 임명장을 받았지만 정권이 바뀐 뒤 그를 수사하게 됐다. 당시 ‘논두렁 시계’로 대표되는 망신 주기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이어졌고, 검찰 개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대통령의 힘이 빠질 경우엔 검찰이 대통령 주변 인사들을 수사하는 일이 되풀이됐다. 1997년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레임덕이 본격화되자 검찰은 ‘소통령’이라 불리던 대통령의 아들 김현철씨를 구속했다. 김대중정부에서도 임기 말 대통령 아들 3명을 수사해 2명을 구속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임기 마지막 해(2012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이 구속됐다.

‘내 목을 치라’ 파워게임도

대통령과 검찰총장이 임기 초반부터 힘을 겨루는 일도 있었다. 노무현정부 초반인 2003년 당시 송광수 총장은 여권이 중앙수사부 폐지를 추진하자 “차라리 내 목을 치라”며 반발했다. 송 총장은 여야의 대선자금을 모두 수사했고, 이 때문에 중수부 폐지 여론은 잦아들었다. 검찰총장의 판정승이었다.

박근혜정부에서도 초대 총장이던 채동욱 총장이 국가정보원의 여론조작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하면서 박 대통령의 ‘역린’을 건드렸다. 이후 채 총장은 혼외자 의혹이 터져 취임 5개월여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대통령의 완승이었다.

반대로 2015년 박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김수남 총장은 2017년 3월 국정농단 사건으로 박 대통령을 구속했다. 김 총장은 “인간적인 고뇌가 컸으나 오직 법과 원칙만을 생각하며 수사했다”고 나중에 술회했다.

지금은 ‘검찰 차르’ 시대

올해 7월 문재인정부의 두 번째 검찰총장인 ‘윤석열 시대’가 열렸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13일 “한국에서 차르(제정 러시아 때 황제)라 불릴 만한 인물”이라고 윤 총장을 평가했다. 임명직 공직자이지만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의미다. 윤 실장은 “적폐 청산 수사를 거치며 직권남용 혐의의 적용 폭이 넓어졌고, 검찰 스스로 자신들을 적폐 청산의 구현자로 보게 된 것 같다”며 “‘적폐 청산은 되지만 청와대 수사는 안 된다’고 말하기 어려워졌다. 검찰 수사가 무리해 보여도 청와대나 여권으로 여론이 확 쏠리지 않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문 대통령은 조국 사태 후에도 여전히 “윤 총장을 신뢰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후 김기현 전 울산시장 관련 청와대 하명 수사 의혹과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 감찰 무마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돼 청와대 압수수색까지 진행됐다. 최근 윤 총장은 “대통령에 대한 충심은 그대로고,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도록 신념을 다 바쳐 일하고 있는데 상황이 이렇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총장이 정치 전면에 나서는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다. 정치 후진국일수록 정치가 검찰 수사에 종속되는 ‘수사의 정치화’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검찰 차르’가 선출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의 위임을 벗어나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민주주의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많다.

결론은 검찰의 힘을 어떻게 나누느냐로 이어진다. 검찰 출신인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금은 총장을 포함한 검찰 조직 자체의 힘이 너무 세다”며 “선진국에선 검찰이 권한을 독점하지 않기 때문에 정치·사회 문제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 자연히 정치권력도 검찰총장을 정권에 복속시키려고 하지 않고, 검찰도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의 직접 수사 총량을 줄이고, 범죄 기소와 수사 지휘라는 본연의 업무만 하게 되면 정치적 중립도 따라온다는 것이다.

임성수 기자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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