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모든 성도·지도자, 참된 교회 세우는 데 헌신해야



평신도를 지도자로 세우는 궁극적 목적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직분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성도와 지도자들은 다른 어떤 것보다 교회를 세우는 데 헌신해야 한다.

교회를 세우는 걸 건축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에베소서 4장 13절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을 말한다. 건강한 교회와 성숙한 교회, 모든 사람이 흠모할만한 교회로 만들어 가는 걸 의미한다.

교회가 부흥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중 하나는 교인이 목회자를 신뢰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담임목사를 자랑하는 교회, 혹 남들이 욕하면 방어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정말 조심할 것이 있다. 목회자에 대한 자부심이 너무 강하면 목사가 교주가 될 위험성이 크다는 점이다. 목사를 존경하되 신처럼 떠받들면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지 않고 자신을 세우는 사람도 많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손’만 구하는 사람들이다. 우선순위가 잘못된 것이다. 신앙생활에서는 우선순위가 중요하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신앙생활을 하면서 먼저 구할 것이 있고 나중에 구할 게 있다. 일의 우선순위를 아는 사람이 지혜자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영혼이 잘되는 것이 먼저다. 그 뒤에 범사에 복을 받고 건강의 복을 받는 것이다. 이 순서를 지키는 사람이 참된 신앙인이다. 이들이 모여 참된 교회를 일구는 것이다.

교회를 세워나가는 과정에서 여우를 조심해야 한다. 큰 여우보다 작은 여우를 경계해야 한다. 이들은 꽃이 핀 포도원을 헤집고 다녀 꽃을 떨어뜨린다. 포도 열매가 맺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 셈이다. 결국 그 포도원은 허물어진다.

작은 여우는 교회에서 기쁨과 향기를 빼앗는 교인을 일컫는다. 교회에서 향기를 빼앗는다는 건 부정적이며 수군거리는 걸 의미한다. 이들의 일이 당장은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부정적 언사는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끝내 주저앉게 만든다. 내상을 입히는 것이다.

이런 상처는 교회가 무너지는 엄청난 결과로 이어진다. 성도는 말을 조심해야 한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할 수 있다. 하면 된다. 해보자.” “당신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이 되십시오.” “당신이 교회에 있을 때 교회가 빛이 납니다.” “봉사하는 당신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희망적인가. 넘어지려던 사람도 벌떡 일으킬 희망의 언어들이다. 이런 말이 많아지는 게 건강한 교회로 향하는 첩경이다.

잘 자란 지도자도 말 한마디에 허물어뜨릴 수 있다. 우리는 무너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우는 사람이 돼야 한다. 나도 세우고 남도 세워야 한다. 세우는 사람이 마침내 상급을 받는다. “유스도라 하는 예수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들은 할례파이나 이들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함께 역사하는 자들이니 이런 사람들이 나의 위로가 되었느니라.”(골 4:11)

여기서 사도 바울은 유대교에서 개종해 기독교인이 된 유스도라는 사람이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인 자신을 도와줬기에 고난 중 위로받았다고 간증한다. 유스도 같은 이름은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랑스러운 이름이다.

우리 모두 유스도같이 교회를 세우고 지도자를 세우는 자랑스러운 성도 사역자가 되기를 소망해야 한다. 목사만 제사장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들이다. 더 이상 한 명의 목사만 스타가 되고 대다수 교인은 구경꾼이 되는 교회가 돼선 안 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각자의 악기로 협연해야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낼 수 있다. 천국의 오케스트라 같은 교회를 만드는 데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정성진 목사<거룩한빛광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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