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오피니언  >  칼럼  >  기타

[뉴스룸에서-박재찬] 만나서 얘기할까



요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정방문은 흔하지 않다. 부모의 학교방문이나 전화 상담으로 많이 대체됐다. 행여 가정방문을 하는 학교에서는 신청서를 낸 가정 등에 한해서만 방문이 이뤄진다. 기독교 성향의 교사모임 단체인 ‘좋은교사운동’은 매년 가정방문 캠페인을 펼친다. 단체 창립 이래 19년째 이어오고 있는데, ‘열 번의 상담보다 한 번의 가정방문이 낫다’가 캐치 프레이즈다. 이 단체 홈페이지엔 회원 교사들의 ‘가정방문 후기’들이 올라와 있다. 가정방문 예찬론이 대부분이다.

‘(아이들 가정을 방문하면) 부모님들이 나눠주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죠…. 그러다 보면 함께 웃고 함께 눈물을 글썽이는 사이 원래 약속된 30분은 훌쩍 넘어갑니다.’ ‘아이들이 왜 학교에 늦게 오는지, 아침에 왜 그렇게 배고프다고 하는지 등등 아이의 어려움을 더 알게 되었습니다’와 같은 얘기가 수두룩하다. 그러면서 ‘가정방문은 반드시 필요한 업무’라고 후기의 끝을 맺기도 한다. 20년 동안 가정방문을 실천했다는 조영종 전 천안부성중학교 교장은 어느 인터뷰에서 “만나서 얘기하면 안 될 일이 없다. 가정방문을 통해 학생들의 ‘숨겨진 진심’과 마주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교회에서는 ‘심방’이라는 제도가 있는데, 가정방문의 기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담임 목사나 부교역자 등이 교회 성도들 가정을 방문한다. 성도 가정의 고민이나 문제도 들어주면서 함께 기도하고, 위로하고 격려해 주기도 한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이 될 때도 있다. 하지만 막상 심방을 마치고 나면 긍정적인 경우가 더 많았다는 게 경험자로서 느낀 감정이다.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떤 끈이 연결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소통이 이뤄지는 것 같다고나 할까.

가정방문이나 심방이 불쑥 떠오른 건 성큼성큼 다가오는 ‘비대면 사회’에 대한 모종의 불안감 때문이다.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먹고 입고 즐기고 싶은 건 웬만큼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은행을 가지 않고도 송금·이체에다 대출까지 할 수 있다.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점 같은 매장에 직접 들르더라도 점원 없이 물품을 구매·주문할 수 있는 곳이 갈수록 많아진다.

비대면 서비스는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라는 날개를 달고 대세가 되고 있다. 또 업계마다 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비대면 서비스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비대면 서비스의 편리성에 대면 서비스는 벌써 구식처럼 여겨진다. 지금이야 비대면 서비스가 경제활동 중심으로 쏟아지지만, 일상 곳곳으로 스며드는 건 시간문제다. 교육·의료·여가 분야 구석구석 사람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은 쏟아지고 있다. 지금 나 스스로 돌아보면 업무의 상당 부분을 카톡 대화에 의존한다. 감정 표현용 이모티콘을 쓰는 데도 익숙하다. 그렇다고 나의 진짜 표정이나 감정이 다 묻어날 순 없다. 상대방이 제시한 정보 속에서 판단하기에 진실을 가릴 수도 있다. 비대면의 한계다.

비대면 서비스가 확산될수록 거동이 불편한 이들이나 대면이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이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취약계층을 위한 요긴한 서비스가 되는 것이다. 동시에 연세가 많은 어르신들은 각종 비대면 서비스가 낯설고 불안하다. 기계보다는 사람을 직접 보면서 일을 처리해야 안심이 간다. 이들은 오히려 비대면 서비스의 또 다른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예전부터 ‘얼굴 보고 얘기하자’ ‘만나서 얘기하자’고 할 땐 으레 중요한 얘기구나 짐작하곤 한다. 두 눈을 쳐다보고 상대방의 표정 속에서 말이 오갈 때 진심이 읽힌다. 동시에 깊은 상호 신뢰가 싹트는 법이다. 눈빛과 낯빛으로, 표정과 목소리로, 몸짓으로 숨겨진 진심이 전해질 수 있다. 비대면 사회에서 얻기 힘든 가치다.

비대면 사회로 흐르는 물결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얼굴 보며 사는 일을 등한시하지 않으면 좋겠다. ‘카톡 할게’ 대신 ‘우리 만나서 얘기할까’가 벌써 그리워진다.

박재찬 경제부 차장 jeep@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