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왜곡된 핵심감정을 치유하는 능력은 ‘사랑’





감정을 치료하는 능력은 사랑이다. 성경은 이렇게 증거한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6)

사람의 왜곡된 핵심 감정이 어떻게 치유되고 변할 수 있을까. 평소 알고 지내던 한 목회자가 이런 말을 했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무척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가족 중 유일한 남자였다. 어려서부터 집안의 가장이라는 책임감이 컸다.

어머니와 누나들이 있었지만, 그가 보기에는 한없이 연약한 존재들이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일하다 쓰러지거나 교통사고 당하기를 반복했다. 집에 돌아오면 무릎을 붙잡고 고통스러워하셨다. 이 모습을 늘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신문과 우유배달을 했다. 마음에는 늘 가난함과 아버지의 부재에서 오는 불안감이 컸다. 동시에 가정에 힘이 돼야 한다는 책임감에 붙잡혀 있었다. 불안과 책임감은 나이 어린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 벅찼다. 그 역시 연약한 어린아이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불안과 책임감이 아이의 가슴에 어떤 핵심 감정으로 자리 잡았을까. 그는 ‘자기 연민’이라고 말했다. “나도 연약해. 나도 보호받고 싶다고. 하지만 의지할 데가 없어.”

의지할 데 없는 소년에게 자기 연민이 핵심 감정이 된 것이었다. 충족되지 않는 자기 연민을 감추기 위해 강한 척도 했다.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과장했고, 그런 과장으로도 희망이 관철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허무해졌다고 한다. ‘불안한 자기 연민’이 충족된 것은 사춘기에 이뤄진 하나님과의 만남이었다. 애타게 기도했던 이유는 오직 한 가지였다. 자기 연민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해 달라고 간절히 구했다. 몇 달 동안 부르짖었고, 결국 닫혔던 말문이 열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불러 본 적 없는 단어, ‘아버지’를 외친 것이다. 처음으로 그의 입에서 아버지라는 고백이 나온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그 순간이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몇 시간 동안 앉아 ‘아버지, 아버지’라 부르는 것만으로 가슴이 벅찼다. 하나님 아버지와의 만남은 그 뒤로 계속 이어졌다. 스스로를 돌아보던 어느 날, 자신 안에 자리 잡았던 불안과 강박, 자기 연민의 어두운 그림자가 깨끗하게 사라졌더라고 고백했다.

아버지를 부를 때마다 흘러나오는 하나님의 사랑이 그의 영혼을 충만하게 채워버린 것이었다. 우리는 왜곡된 사울 왕과 확연하게 대비되는 위대한 사람을 알고 있다. 다윗이다. 그는 사울을 떨게 만든 골리앗을 단숨에 제압했다. 이스라엘의 군대 장관으로 승승장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높였다.

그런데도 다윗은 억울한 일을 수없이 당했다. 시기심에 눈이 멀고 미쳐버린 사울 왕에 쫓겨 13년이나 도망자 신세로 살았다. 그런 다윗이 사울처럼 미치지 않고 그토록 눈부시게 아름다운 신앙의 완성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시 23:1~6)

다윗은 어디를 가든 자신의 내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다. 모든 순간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노래하며 그 사랑에 기댔다. 그리고 그 사랑을 믿었다.

감정을 치유하는 능력은 사랑이다. 그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이다. 상처받았기에 불행한 인생이 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면에서 느껴본 일이 없기에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독자들 내면에서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오늘 듣길 소망한다.

이창우 박사(선한목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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