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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배병우] 미국 외교의 붕괴



미국 하원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대통령 탄핵 조사 청문회가 2주째로 접어들었다. 외국에 대한 원조까지 자신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악용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후안무치와 그의 개인 변호사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 등 ‘비선’들의 국정 전횡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어쩌면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전현직 외교관들의 직설적인 토로를 통해 드러난 미국 외교의 추락이다. 마리 요바노비치 전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대사와 그의 후임인 윌리엄 테일러 대사 대행, 조지 켄트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부차관보 등은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정책에서 오는 불안감, 충동적 결정을 접하는 당혹감을 털어놨다.

동맹을 멀어지게 하고 지정학적 위기를 키우는 대외정책 노선을 따라야 하는 데서 오는 좌절감도 곳곳에서 묻어났다. 비선에 휘둘리는 트럼프 시대 미국 외교의 실상을 한눈에 보여준 증언도 있다. 피오나 힐 전 국가안보회의(NSC) 유럽·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나는 퇴근해서까지 텔레비전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면서 “하지만 저녁에 집에 가면 (트럼프의 비선 실세인) 줄리아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기 위해 폭스뉴스를 보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낸 윌리엄 번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 이사장은 최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미국 외교의 붕괴(The Demolition of US Diplomacy)’를 실었다.

번스 이사장은 냉전이 시작된 1950년대 초반 국무부가 미국을 휩쓴 매카시즘 광풍의 최대 과녁이 된 이래 최근 미국 외교정책과 외교관이란 직업이 가장 파멸적인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적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극단성, 진실에 대한 무관심, 직업공무원에 대한 경멸 등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조지프 매카시 전 상원의원이 닮은꼴이라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트럼프 시대 미국 외교관들이 겪는 수많은 가슴앓이 중 하나일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내뱉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50억 달러’ 관철 특명도 외교관들을 괴롭힌다. 국무부 관리들로 구성된 협상팀은 터무니없이 늘어난 액수를 채우기 위해 그럴듯한 근거와 논리를 세우는데 골머리를 앓는 분위기다. 50억 달러의 금액을 두고 끼워맞추기 식으로 한국 정부에 제시한 청구서를 작성했다는 얘기다.

배병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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