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의경] 수능 한파



14일 오후, 약속이 있어 집 밖으로 나섰다. 2년 만에 찾아온 수능 한파라더니 바람이 매서웠다. 문득 오래전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집 밖을 나서던 날이 떠올랐다. 손난로를 주머니에 넣고 만지작거리던 감촉이 손에 생생히 잡히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수능시험이 이미 끝났을 시간이었다. 번화가에 들어서자 시험 이야기를 하며 걸어가는 수험생이 여럿 보였다. 약속장소인 카페로 들어가 친구를 기다리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세 명의 여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도 수험생들로 보였다. 모두 표정이 좋지 않았고 한 학생은 울고 있었다. 시험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 학생은 죽고 싶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수학능력시험을 봤던 날 나도 저 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았다. 시험을 망쳐서 세상이 끝난 기분이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소리를 하도 많이 듣다 보니 수능시험을 망치면 앞으로의 인생도 녹록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카페에서 나와 편의점에 들렀다. 편의점 주인은 술과 담배를 사려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편의점 주인은 학생들에게 이번에 시험을 본 학생들이 아니냐며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학생들은 자신은 수험생이 아니라면서 집에 가서 신분증을 가져오겠다고 말한 뒤 밖으로 나갔다. 겉모습만 봐서는 그들이 미성년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자 편의점 주인은 계산하려고 줄을 선 손님에게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면서 수능시험일에는 술, 담배를 사려는 미성년자들이 많기 때문에 신분증 확인을 더욱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편의점 밖으로 나가자 또다시 찬바람이 옷깃으로 스며들었다. 신분증을 가져오겠다고 말한 학생들은 편의점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찬바람이 오래전 수능시험 치르던 날과 그날의 기분을 더욱 생생히 떠올리게 해주었다. 추운 날씨 때문에 시험을 망쳤다는 사실이 더욱 슬프고 절망적으로 다가왔던 날. 그래서 어른처럼 술 한잔 하고 싶었던 날.

김의경 소설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