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의학 칼럼] 왜곡된 핵심감정, ‘말씀’으로 치유하자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9:35)

‘왜곡된 핵심감정을 치료하는 알약’이 있다. 그 알약에 대해 알아보자. 누구나 신화를 갖고 살아간다. “인생이란 도전이야.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것이지. 내가 노력한 만큼 대가를 얻고 말겠어”라는 신화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반면 “인생이란 신이 없는 허무한 것이야. 아무리 노력해도 다 부질없는 것이지. 그냥 살다 사라지자”는 신화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신화는 “인생은 하나님께 달려 있어. 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지. 감사하며 살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 안에는 제각각 자신이 만든 신화가 있고, 그 신화를 믿고 살아간다.

다양한 신화를 만들어내는 가장 근원적인 요소가 바로 핵심감정이다. 사울 왕을 보면 사울이 만들어내는 신화와 그 신화를 만들어내는 핵심감정이 보인다. 사울 왕은 왕이 없던 사사 시대에 ‘내가 왕이 돼야 한다’는 신화를 갖고 있었다. 사울은 선지자 사무엘의 권위에 도전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뒤 자신의 기념탑을 세운다. 그는 ‘자신의 왕 됨’을 위협하는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한다. 그리고 그를 추격한다. 그리고 점점 이성을 잃었고 그럴수록 왕의 자리에 집착했다.

밥을 먹다 창을 집어 던지기도 하고, 다윗과 자신을 비교하며 심한 열등감에 빠져들기도 했다. 악신에 빠져 정신을 잃기도 했다. ‘내가 왕이 돼야 한다’는 자기 신화가 실현되지 않자 점점 미쳐 간 것이다.

‘내가 왕이 돼야 한다’는 사울의 자기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 핵심감정이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작은 베냐민 사람이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기스 가문 출신이었다.

사울 왕이 비교의식과 열등감에 사로잡힌 것은 가장 작은 지파의 비천한 가문 출신이라는 자기 열등감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열등감이 자기 이름을 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냈고, 다윗이라는 더 큰 이름을 만나자 흉측한 분노의 사람으로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이란 자신 안에 자리 잡은 왜곡된 핵심감정을 치유하는 데까지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의 영향력보다 자신의 왜곡된 핵심감정의 지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간파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단순한 관념이나 생각, 견해, 가치관 정도로 머물러 있는 사람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생각이나 견해, 관념은 감정을 압도하지 못한다.

현대인들은 치료와 치유를 잘 구분하지 않는다. 의학적으로 보면 치료와 치유는 완전히 다르다. 치료란 의사나 약을 통한 의료적 행위를 말한다. 수술하거나 약을 먹는 것이 대표적이다. 치유는 의술이 환자 안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약이나 수술이 효력을 발휘해 본래 지녔던 생명력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왜곡된 핵심감정의 치유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말씀이라는 약이 필요하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가 권세가 되는 것이 치료다. 그렇게 되면 말씀의 권세가 우리 안에 생명력을 회복시키는 치유가 이뤄진다.

우리 삶에 그려지는 신화를 인식해야 한다. 내가 만들어내는 신화들이 아름답지 못하면 내 안에 왜곡된 핵심감정이 자리 잡게 된다. 우리는 자신을 직면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는 걸 받아들이고, 왜곡된 핵심감정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알약이 들어갔는지 확인해야 한다.

상처받은 감정을 치유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지 않다. 수행이나 노력과도 관계없다. 오직 말씀의 힘과 권세에 달려 있다. 의사는 건강한 사람에게 투약하지 않는다. 아프다는 사람이나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애통해하는 사람만 치료하고 처방한다.

자신의 문제를 알고 애통함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에게 의사이신 주님은 치유를 위한 말씀의 치료제를 투여하신다. 오늘도 의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시길 바란다.

이창우 박사 (선한목자병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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