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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코너-노석철] 중국의 빗나간 애국주의



‘청산은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다. 반드시 물은 동쪽으로 흐른다’(청산차부주 필경동류거·靑山遮不住 畢竟東流去). 이는 마오쩌둥과 시진핑 국가주석 등 중국 국가지도자와 왕이 외교부장까지 거스를 수 없는 중국의 힘을 표현할 때 인용하는 송나라 시인 신기질(辛棄疾)의 시구절이다.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쏟아지는 ‘애국주의’ 드라마 가운데 ‘외교풍운(外交風雲)’에도 이 문구가 나온다. 신중국 초기 미국의 반대로 유엔 가입이 부결되자 마오쩌둥은 옆에 있던 어린 손녀에게 이 시의 의미를 묻는다. 손녀는 “역사의 큰 물줄기는 몇 개의 청산이 있어도 굽이쳐 돌아 동해로 흘러가며 어떤 힘도 막을 수 없다”고 답한다. 마오쩌둥은 미소를 짓는다. 그는 미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방대한 영토와 인구를 거론하며 세계 각국이 중국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서방국가들은 앞다퉈 대만을 버리고 중국과 수교를 했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中華)사상은 뿌리 깊다.

중국에선 애국주의 영화 ‘나와 나의 조국’ ‘중국기장’ ‘등반자’ 등이 선풍적 인기를 끌며 극장가를 점령했다. ‘나와 나의 조국’은 신중국 건국, 1964년 원자폭탄 실험 성공, 1997년 홍콩 반환, 2008년 베이징올림픽, 2016년 유인우주선 선저우 11호 귀환 등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7가지 이야기로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내용이다. 애국주의 바람은 신중국 건국 70주년을 맞아 중국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한 대형 기획이다. 각종 신무기 공개로 군사력을 과시한 신중국 70주년 열병식은 기획의 정점이었다. 1842년 아편전쟁 패배와 난징조약 굴욕, 100년간의 외세 침탈, 신중국 초기 가난과 굶주림을 이겨내고 일궈낸 강대국의 면모를 한껏 과시했다.

하지만 중국의 힘 자랑을 옆에서 지켜보는 처지에선 마음이 편치 않다. 덩치는 부쩍 커져 미국과 맞짱 뜨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했는데, 그에 걸맞은 품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애국주의가 극도의 배타성과 공격성을 띠는 것도 걱정된다. 최근 불거진 NBA 휴스턴 로키츠의 대릴 모리 단장 사건은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모리 단장은 홍콩 지지를 표명했다가 중국 기업들의 ‘협력 중단’ 위협에 결국 글을 삭제했고, NBA까지 유감을 표명했다. 이어 애덤 실버 NBA 총재가 “모리를 지지한다”고 밝히자 관영 CCTV까지 ‘NBA 중계 중단’을 선언했다. 이 와중에 비디오게임 회사 블리자드가 홍콩 시위를 지지한 게이머를 즉각 퇴출시켰다. 애플도 인민일보가 홍콩 경찰 위치추적용으로 쓰는 앱 ‘HK맵.라이브’를 비판하자 앱스토어에서 내렸다. 따라서 미국 기업들이 중국 자본에 휘둘려 숭고한 가치관까지 내팽개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중국은 막대한 부와 거대한 시장을 무기로 세계를 겁박하고 중국식 가치관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돈을 벌려면 미국 기업들도 중국식 가치에 거스르는 얘기는 꺼내지 말고, 중국의 질서에 누구도 도전하지 말라는 얘기나 다름없다. 중국이 자국내 소수민족을 다루는 방식도 비슷하다. 중국은 티베트의 독립 요구를 무력 진압하고, 신장위구르에선 100만명을 수용소에 가두는 등 무자비한 탄압을 하고 있다. 외국 세력이 왈가왈부하면 ‘내정간섭’이고 ‘주권침해’라며 보복을 경고한다. 외국기업들은 이미 중국이 기침을 하면 스스로 알아서 기는 지경이 됐다.

자국내 소수민족은 무력으로 제압하고, 세계는 돈으로 주무르는 게 중국이 추구하는 세계 질서인가. 홍콩 사태가 불거진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홍콩은 중국 땅이지만 서구식 제도가 작동하는 일국양제 시스템이다. 그런데 자꾸 소수민족 다루듯 통제와 검열을 강화하려 하니 민심이 폭발한 것이다. 홍콩 거주민이 많은 미국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는 어쩌면 당연하다. 표현의 자유까지 억누르려 한다면 그 역시 내정간섭 아닐까. 그런 방식으로는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어 세계의 리더가 되기는 어렵다. 중국이 세계 질서의 지배자가 되는 날은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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