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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리사니-전슬기] “저 기계가 나의 자리를 뺏는다”



19세기 초 영국에서는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다. 기술 발달로 노동자들이 일하던 공장에 방직기 등이 등장했는데, 이를 통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나타났다. 기계의 등장은 실직과 임금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분노가 거리를 메웠다. 설상가상 당시에는 전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았다. 불황으로 실업자가 증가하고, 물가는 치솟았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은 생활고의 원인을 ‘기계’ 탓으로 돌렸다. “저 기계가 나의 자리를 뺏는다.” 분노는 곧 폭력이 됐다.

러다이트운동으로 불리는 이 사례는 기술 발전에 따른 진통을 보여주는 예시다. 최근 이 운동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택시’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여러 명이 목숨을 끊는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나의 자리를 뺏는다는 분노와 그 배경에 깔린 경기불황이 19세기 초 영국과 닮은꼴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다만 두 사안을 닮았다고 하려면 혁신이라는 전제가 필요하다. 최근 나타난 유사 택시는 혁신의 흐름이며, 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희생과 진통이 필요하다는 전제다. 그렇다면 유사 택시는 혁신이라고 불릴만 한가.

대표적인 모빌리티 플랫폼인 ‘타다’는 기발한 서비스다. 호출이 뜨면 자동으로 모회사 쏘카 소유 차량을 렌트하고, 여기에 파견·용역업체 소속 드라이버를 알선해 이용자에게 제공한다. 타다는 기존 택시에서 겪었던 승차거부, 불필요한 대화, 불친절한 응대, 불쾌한 냄새 등이 없다. 타다를 혁신으로 봐야 한다고 사람들이 주장하는 이유다.

반면 다른 시각도 있다. 한 사회가 진통을 겪으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기술 혁신인지는 의문이라는 것이다. 타다는 이용자 후생인 서비스 혁신에 가깝다는 주장이다.

‘플랫폼 경제’는 맞는 걸까. 플랫폼 경제는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해 준다. 비슷한 형태의 우버는 차량 운전자와 이용자가 ‘콜’에 의해 일시적인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타다는 다소 다르다. 파견 업체로부터 기사를 제공받고 있다. 고용 관계 없이 연결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으로 기사들에게 일을 시킨다고 볼 수도 있다.

타다가 정말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도입했을까. 업계 관계자들은 타다가 나오기 전 비슷하게 렌터카와 대리운전 기사를 동시에 제공하는 차차크리에이션이 있었다고 말한다. 차차는 ‘유사 택시영업’이라는 위법 판단 때문에 서비스를 종료한 바 있다. 완벽히 새로운 아이디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혁신’에 대한 애매함은 ‘타다’가 기존 규제, 기존 법의 예외 대상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들은 기존 제도를 어겨도 되며, 우리 사회가 이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하는지에 대한 계속되는 물음이다.

타다는 기존 규제를 건너뛰고 있다. 택시는 사업자 면허가 필요한 규제 산업이다. 면허를 얻으려면 대가를 치른다. 개인택시 면허는 개당 7500만원, 법인택시의 경우 개당 5000만원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타다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정부는 1400대를 운행 중인 타다와 기여금을 통한 비용 지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타다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협상이 깨질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면허라는 건 ‘벽’을 만들어 종사자들을 보호하고 동시에 전문성 등을 통해 소비자도 보호하는 장치다. 일종의 진입장벽으로 나쁘게 볼 수도 있지만, 새로운 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비용 지불 없이 경쟁에 뛰어드는 것도 반칙이 될 수 있다. 기존 법과의 관계도 문제다. 사업자와 근로자 사이를 오가는 플랫폼 노동자는 기존 노동법을 적용하기 힘들다. 만약 타다가 플랫폼 경제를 말하면서도 기사들과 고용 관계를 더 직접적으로 맺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혁신이라는 이유로 근로기준법을 외면하는 일이 나타날 수 있다.

기술 발전은 늘 빠르다. 기존 사회의 틀이 그것을 못 따라잡고 혁신의 날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공존의 가치도 있다. 구성원들이 혁신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기술도 배려가 필요하다. 그 기술의 명암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나는 진보한 존재니 당연히 너희들이 변해라”라는 우월한 시선은 자칫 우리 모두에게 독이 될 수도 있다.

전슬기 경제부 기자 sgj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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