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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들 ‘일그러진 혁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스타트업 ‘유니콘’(스타트업 중 시장가치가 10억 달러에 육박하는 비상장 기업)들이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가능성 하나로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막상 사업을 구체화하다 보니 부실한 경우가 많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여기에 창업자의 윤리적인 문제까지 겹치며 날개 없는 추락을 하는 유니콘들도 나타나고 있다. 문제는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고 있음에도 자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유오피스 사업 스타트업 위워크는 날개 없는 추락을 하는 중이다. 한때 기업가치가 470억 달러(약 56조원)에 달한다는 평가를 받았던 위워크는 이제 대규모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과대 포장돼 있다는 사실이 나타난 데다 창업자 애덤 뉴먼의 비윤리적인 행동이 문제가 되면서 IPO가 무기한 연기됐기 때문이다.

2010년 미국 뉴욕에서 뉴먼 등이 창업한 위워크는 ‘부동산계의 우버’로 불리며 거침없이 성장해 왔다. 사무실을 구하기 어려운 개인 및 중소사업자들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유오피스를 제공하며 ‘오피스 플랫폼’ 사업을 전면에 내세웠다. 위워크는 2010년 1개 도시에서 2개의 사무실을 운영하는 데 불과했으나 현재 111개 도시에서 528개의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위워크의 허상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위워크의 가능성을 크게 산 투자자들 덕분에 외형을 키울 수는 있었지만, 내실이 없었다. 위워크가 상장을 위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2016~2018년 위워크는 매출과 순손실이 비슷한 규모였다. 2018년에는 매출 18억2175만 달러, 순손실 16억1079만 달러였다. 위워크 사업 구조가 건물을 저렴하게 임대해 이를 다시 재임대하는 형태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부동산 임대업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투자사 모건 스탠리는 “위워크의 IPO 실패는 수익을 못 내는 유니콘 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기에 뉴먼의 기행이 논란거리가 되면서 그는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스라엘 출신인 뉴먼은 군 복무 후 “좋은 직업을 갖고, 많은 돈과 엄청난 재미를 찾겠다”며 뉴욕으로 왔다. 이후 유아용 의류 사업과 부동산 임대업을 하다 위워크를 창업했다. 위워크의 기업가치가 올라가면서 그의 재산은 22억 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자신의 전용기에서 마리화나를 피우고, 대량 해고를 한 후 테킬라를 돌리는 등 기행이 밝혀지며 이미지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또 자신이 보유한 주식에 의결권을 10배 부여하고, 자신이 죽으면 후임 CEO에 아내를 선임토록 하는 등 독단적인 경영으로 빈축을 샀다. IPO도 투자자들이 만류했지만 뉴먼이 독단적으로 밀어붙이다 탈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위워크에 60억 달러를 투자했던 소프트뱅크그룹이 뉴먼의 사임을 종용하게 됐다.

미국 언론은 뉴먼을 두고 ‘캘러닉 2.0 버전’이라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우버를 창업했던 트래비스 캘러닉을 연상시킨다는 것이다. 캘러닉은 성추행, 성차별 발언, 실적을 압박하면서 거친 언행을 한 점 등이 문제가 되면서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자담배계의 아이폰’으로 불리던 쥴(Juul)의 제조사 ‘쥴 랩스’의 캐빈 번스 CEO도 최근 물러났다. 쥴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지 않고 ‘전자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안전하다’고 광고를 낸 게 발단이 됐다. 여기에 청소년들 사이에서도 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사회문제로 비화하자 여론의 비판을 이기지 못하고 CEO가 사임하게 된 것이다. 미국 온라인매체 쿼츠는 “뉴먼의 추락은 실리콘밸리 유니콘 버블의 종점”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위워크와 쥴의 CEO 사임에 대해 실리콘밸리 성공공식의 취약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는 점에 투자자들이 열광했지만, 기업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의 내실을 살펴보기보단 CEO의 스타성, 인기 등을 더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삼다가 본질을 제대로 못 본다는 것이다.

특히 투자자와 스타트업 CEO 사이의 역학관계에서 CEO가 더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이 문제점이라고 꼬집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스타트업으로 시작해 전 세계를 지배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경우를 경험한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이 ‘차세대 대박’을 노리고 막대한 자금을 들고 줄을 서 있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현재나 경영적인 측면보다는 CEO가 제시하는 담대한 비전에 매료돼 투자하게 되고, 스타트업 CEO는 자신의 독선과 오만함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에서 통제되지 않은 CEO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 반복된다는 점도 문제다. 한때 ‘여자 스티브 잡스’로 추앙받던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가 대표적이다. 홈즈는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진단 키트 ‘에디슨’을 개발했다며 한동안 미국에서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자수성가한 백인 여성 CEO의 스토리는 실리콘밸리 투자자와 미디어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 의학적 검증 요구는 홈즈의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졌다. 하지만 WSJ가 에디슨의 기술적 결함을 보도하면서 테라노스와 홈즈의 거짓이 하나둘 밝혀졌고, 홈즈는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갈 상황에 놓였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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