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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울린 18세 청년… 형 사살한 백인 여경에 ‘용서의 포옹’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방법원에서 2일(현지시간) 브랜트 진이 자신의 형을 사살한 전직 여성 경찰관 앰버 가이거와 포옹하고 있다. 브랜트의 형 보탐 진은 지난해 9월 2일 집에서 TV를 보고 있다 그를 자신의 집에 들어온 침입자로 착각한 가이거가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정의와 평화는 죽었다”는 구호가 울려퍼지던 법정이 곧 조용해졌다. 구호를 외치던 시민들은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라는 흑인 청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울고 있던 피의자가 앞으로 걸어나왔고, 증인석에 앉아 있던 흑인 청년은 그를 포옹했다. 청년의 품에 안긴 피의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도 오열했고, 판사도 눈물을 훔쳤다.

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댈러스카운티 연방지방법원에는 미국 언론의 관심이 집중됐다. 카리브해 섬나라 세인트루시아 출신의 흑인으로 컨설팅 회사에 다니며 촉망받던 젊은 회계사가 자기 집에서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숨진 사건의 판결이 나올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억울하고 황망한 죽음이었다. 지난해 9월 야간근무를 마치고 귀가한 백인 경찰관 앰버 가이거(31)는 집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조심스럽게 들어간 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TV를 보고 있던 피해자 보탐 진(당시 26세)을 총으로 쐈다. 자신의 집은 3층이었는데 남자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가 4층에 잘못 내린 뒤 보탐을 침입자로 착각해 저지른 끔찍한 실수였다. 가이거는 “강도인 줄 알았다”고 항변했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서 인종차별적인 문자메시지가 다수 발견돼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검찰이 징역 28년을 구형한 데다 전날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유죄 평결을 내리며 사실상 무기징역인 최대 99년형이 가능해진 상황이었지만 재판부는 예상보다 낮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법정에 모였던 시민들은 분노하며 야유했는데 이때 증인석에 앉아 있던 보탐의 동생 브랜트 진(18)이 입을 뗐다.

브랜트는 눈물 머금은 눈으로 형의 원수를 바라보며 “저는 당신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사랑합니다. 당신이 죽고 썩어 사라지길 원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저는 당신이 감옥에 가는 일도 바라지 않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것만 빌어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 형이 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러면서 남은 삶은 그리스도에게 헌신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어 브랜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게 가능한 일인지 잘 모르겠지만, 제가 그를 한 번 안아줄 수 있을까요”라고 판사에게 물었다. 판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를 허락했다. 울고 있던 가이거와 브랜트는 서로를 안은 채 한참동안 대화를 주고받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10대 소년이 보여준 용서에 찬사가 이어졌다. 에릭 존슨 댈러스 시장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보탐과 브랜트 형제, 그들 가족이 보여준 사랑과 믿음, 믿을 수 없는 용기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존 크루조 댈러스카운티 지방검찰청장도 “오늘날 사회에서, 특히 우리의 지도자들에게서 보기 드문 ‘사랑과 치유’의 놀라운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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