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문화라] 친절에 대하여



낯선 도시에서 경험한 친절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20대 후반에 유럽의 작은 도시로 배낭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1층은 작은 술집이었고, 2층은 기숙사형 숙소인 곳에 묵게 되었다. 그날 밤 일행 중 한 명이 우연히 아는 선배를 만나게 되어서 1층에서 담소를 나누었다. 자정쯤 끝내고 숙소로 올라가서 자려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적은 종이를 방에 두고 나와서 누를 수가 없었다. 가게 바깥으로 나가서 창문 밑에서 일행의 이름을 불렀지만 아무리 불러도 내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난감해졌다.

남은 두 명과 함께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사람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건너편 골목길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30대의 여성분이 내렸다. 부탁할 용기가 차마 나지 않았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정말 밤새 바깥에서 밤을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탁을 드려봤다. 숙소의 문이 잠겨서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어디든 상관없으니 잘 만한 곳을 부탁드려도 되겠느냐고 여쭤보았다. 1층에 연습실이 있는데 여기도 괜찮으면 자고 가라는 것이었다. 감사하다고 연신 인사를 드렸다. 그곳에서 웅크리고 잠을 잔 뒤 다음 날 숙소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가끔씩 그날 밤의 일이 생각났다. 도시에서 살면서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점점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많아진다. 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누군가와 같이 탔을 때, 혹은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모르는 사람이 말을 걸어오면 경계심부터 가지는 경우가 꽤 있다. 행복에 대해 설명해주는 책인 ‘리케’를 보면, 저자는 남을 도우면서 사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해준다. 베푸는 게 행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도와주면 행복감을 느끼는 헬퍼스 하이(helpers high)를 경험한다고 한다. 누군가 내게 친절을 베풀면 나도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마크 트웨인은 친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친절은 귀먹은 사람도 들을 수 있고, 눈먼 사람도 볼 수 있는 언어”라고. 친절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태도이다. 타인에 대한 친절, 아마도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열쇠가 아닐까 싶다.

문화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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