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권민정]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곳



아사? 2019년 대한민국에서. 먹을 것이 넘쳐나고 영양 과잉으로 다이어트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된 사회에서 굶주림 끝에 사람이 죽었다고 했다. 탈북 모자의 비극적인 죽음. 그들이 살던 아파트에는 먹을 수 있는 거라곤 한 줌의 고춧가루뿐이었고 통장 잔고는 0원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돈이 없다 하더라도, 어떻게 집안에서 어린아이와 함께 굶어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의 의문이었다.

광화문에 설치된 탈북 모자 임시 분향소에 들렀다. 배가 고파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이 땅에 왔던 젊은 여성이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 너무 안타까워 분향하는 데 눈물이 솟구쳤다. 하나원 교육생의 한국가정문화체험 프로그램에 우리 가정이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 우리 집에서 묵었던 한 여성을 통해 탈북민이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고생을 하며 위험을 겪는지를 들어 알고 있었기에 더 가슴이 미어졌다.

아사한 여성은 10년 전 탈북해 초기에는 제빵자격증, 운전면허증도 따고 취업도 하는 등 한국에서 잘 정착하기 위해 무척 의욕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탈북 중 어쩔 수 없이 결혼한 조선족 남편은 임신한 그녀를 상습 폭행했으며 태어난 아기는 심한 뇌전증을 앓았다. 이혼해 혼자 아이를 키울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아픈 아이 때문에 일을 할 수 없었고 10만원의 아동수당 외에는 다른 소득이 없어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다. 주민센터에 도움을 청했지만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녀는 우울증을 앓았다. 휴대폰이 끊겨 외부와는 차단되었으며, 이웃과 교류도 없었다는 것이 분향소와 여러 보도 매체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다.

부모 형제자매는 물론 친척 하나 없는 외로운 처지에, 아픈 아이 데리고 굶어 죽기까지 느꼈을 그녀의 한과 두려움이 전해졌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뼛속 깊이 사무치는 외로움, 캄캄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절망할 수밖에 없었고 바로 그 절망이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렇게 생을 포기할 때까지 먹을 것 하나 없이 고통 속에 있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이 안타깝다. 그의 죽음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죄인이다. 북한의 정권이 제일 큰 죄를 지었다면 우리 정부와 복지담당자, 같은 탈북민들 모두가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만의 탓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도 못하는 한국교회와 나를 비롯한 교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볼 일이다.

그녀의 집에서 성경책이 나왔다. 하나원에서 교육을 마치고 나올 때 받았을 뿐인지, 교회를 다녔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녀가 피난처이시고 힘이 되어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깝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녀가 위기의 순간에도 가까운 교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왜 우리 교회는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교회의 문턱이 너무 높은 게 아닌가. 쌀통에 쌀은 떨어지고, 은행잔고가 바닥나고, 삶에 있어 살아갈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그렇게 캄캄할 때라도 한 줄기 빛이 있으면 살아난다. 교회가 절망한 사람이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곳, 그곳에 가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교회였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교회는 세상에서 환난 겪은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 소외되고 궁핍할 때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곳이 돼야 하지 않을까. 바람직한 교회의 모델을 말할 때면 항상 초대교회를 꼽는다. 초대교회는 누구나 차별 없이 환대했고, 연약한 사람을 도왔기에 힘 있고 능력 있는 교회가 됐다.

그들 모자가 비참하게 죽어간 지도 벌써 많은 시간이 흘렀고, 우여곡절 끝에 장례식도 치러졌다. 그러나 세 끼 밥을 먹으면서 문득문득 생각나 마음이 아프고,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먹을 것을 보면 또 가슴이 쓰려온다. 탈북 모자의 죽음을 애도하며, 이제는 배고픔도 슬픔도 없는 하늘나라에서 고이 잘 지내기만을 빌어본다.

권민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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