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동 골목에는, 교회인 듯 교회 아닌 책방 같은 교회 있다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 한림말1길 옥수서재를 찾은 한 주민이 이곳 대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강민석 선임기자
 
옥수서재 입구 모습. 오른쪽은 옥수서재 대표 최아론 목사(왼쪽)와 권오준 목사.


서울 성동구 한림말1길, 주택가 골목에 지난 5월 작은 서점이 문을 열었다. 서점에는 ‘옥수서재’라는 간판이 걸렸다. 대형 서점과 인터넷 서점이 판을 치는 시대에 동네서점은 낯선 이웃일 수 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이웃이 사랑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주민들이 편히 찾아 책을 읽고 대화하는 열린 공간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서재라고 이름 붙였는데, 그런 바람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허름한 건물 지하 1층에 터를 잡은 서점은 입구에서부터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지난 16일 서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재즈풍으로 편곡된 가수 이문세의 ‘가을이 오면’이 울려 퍼졌다.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 ‘서촌’ 앨범에 실린 연주곡이었다.

82.6㎡(25평) 넓이의 서재는 칸막이 없이 시원하게 트여 있었다. 서점에는 1500여권의 책이 보기 좋게 진열돼 있었다. 한쪽 구석에는 앉아서 책을 읽을 수도 있는 계단식 공간이 마련돼 있었다. 맞은 편에는 커피를 만드는 주방도 있었다. 평일 낮이었지만 몇몇 주민들이 책을 읽고 있었다.

앞치마를 두른 대표들이 반갑게 인사했다. 최아론 목사와 권오준 목사였다. 목회자 두 명이 이끄는 서점은 주민과 소통하고 함께 책을 읽는 공간이다. 주일에는 예배도 드린다. 서점이면서 교회인 셈이다.

하지만 대표들은 이곳을 서점이나 교회, 둘 중 하나로 규정하지 않았다. “옥수서재는 주민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방문해 편하게 만나 대화하는 공간입니다. 복음을 전하려는 의도로 서점을 앞세운 건 아닙니다. 권 목사와 책 읽기 모임을 하던 중 서재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된 소박한 공간입니다.” 최 목사가 말했다.

권 목사도 거들었다. “선교적 교회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기존교회와 다른 방식의 선교와 목회를 해 보자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바람이 옥수서재에 녹아 있습니다. 다만 이곳을 찾는 주민들에게 복음을 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와 대화하다 우리가 목사인 걸 알게 되는 식이죠. 서재에서는 아이들부터 어른까지 다양한 책읽기 모임이 열립니다. 책을 통해 만나고 교제하고 대화하고 있죠.”

책과 커피는 목사와 이웃을 연결하는 매개체다. 책과 커피가 가교가 되는 것이다. 커피를 만드는 공간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권 목사는 “책과 커피가 주민과 우리를 연결해 주고 있다”면서 “커피 맛이 좋다는 소문이 동네에 자자하다”며 웃었다.

두 명의 목회자는 공간이 지닌 힘에 대해 관심이 컸다. 교회가 아니면서도 교회이기도 한 옥수서재가 가진 힘도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최 목사가 운을 뗐다. “사실 많은 교회가 주민과 만나기 위해 카페를 만들지만, 교인이 아니면 잘 찾지 않습니다. 옥수서재는 다릅니다. 이 공간은 목회자에게도, 교인들에게도, 주민들에게도 열린 곳이에요.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죠. 옥수서재가 가진 힘입니다.”

권 목사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이웃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선 공공의 공간이 돼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서재는 거부감이 없죠. 주민들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서재가 바로 옥수서재입니다. 제가 꿈꿨던 선교적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인터뷰 중 프랑스의 고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이야기가 나왔다. 파리 5구 뷔쉐리거리에 있는 이 서점은 1919년 선교사인 아버지를 따라 파리에 와 정착했던 미국인 실비아 비치가 세웠다. 제임스 조이스와 헤밍웨이 등 유명 작가들의 사랑을 받던 곳으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삶과 책 읽기가 어우러지는 공간으로 유명하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같은 공간이 되면 좋죠. 이제 시작입니다. 늘 그런 곳으로 성장해 나가길 바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서 대화하고 그 안에 복음이 꿈틀거리는 공간말입니다.” 최 목사의 바람이었다.

권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해 늘 고민한다”면서 “결국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으로서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며 잘 살아가는 것, 그것이 선교적 교회를 꿈꾸며 옥수서재를 연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밝혔다.

서재는 작가들에게도 열려 있다. 오는 29일에는 황선혜 작가가 ‘가족과 어린 시절의 추억’을 주제로 설치미술전을 연다. 30일에는 목회자들을 위한 모임도 시작된다. ‘목회자의 서재’라는 이름으로 목회자들의 책 읽기 모임이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박동현 장로회신학대 은퇴교수가 길잡이다. 주제는 ‘노인과 가정’. 박 교수가 ‘노년, 사회, 가정과 교회 이야기’를 주제로 대화의 소재를 전하면 참석자들은 노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토론을 이어간다.

권 목사는 “전통적인 교회와 새로운 교회가 조화롭게 성장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면서 “옥수서재의 도전을 통해 그런 목표에 조금씩 다가서길 소망한다”는 기대를 전했다.

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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