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하라 (8) 행동으로 보여준 진심에 감동… 그는 나의 수호천사

시각장애인 가수 오하라씨(오른쪽)와 이태웅씨가 2014년 5월 결혼을 앞두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전철역에서 종종 그 남자와 마주쳤다. 우리는 전철을 기다리며 수다를 떨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일부러 내 하교 시간에 맞춰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는 조용한 성격이었다. 점점 친해졌다. 같이 밥도 먹고 집까지 바래다주는 사이가 됐다.

그러는 사이에 졸업했고 안마사 자격증을 받고 일자리도 얻었다. 그리고 풍요로운 가을날 그는 내게 “생일 축하한다”며 선물을 불쑥 내밀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선물을 뜯었다. 허리띠가 들어 있었다. 어릴 적부터 꽤 마른 편이라 허리띠 줄이 길어 불편했는데 그가 준 허리띠는 꼭 맞아 그런지 마음에 ‘쏙’ 들었다.

그는 그림을 잘 그렸다. 스케이트보드 강사를 할 정도로 운동도 잘했다. 남다른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그는 생일선물을 받고 활짝 웃으며 좋아하는 내게 말했다.

“너는 웃는 모습이 정말 예뻐. 처음 만났을 때 고맙다며 웃던 모습을 잊을 수 없었어. 이제 두렵기까지 해. 네가 들고 다니는 그 흰 지팡이가 커다란 흰 날개가 돼 날아가 버리는 악몽을 꾸기도 해. 그래서 너를 꼭 묶어두려고 허리띠를 선물한 거야.”

나는 지금도 가끔 그때 일을 이야기하며 그렇게 유치찬란한 프러포즈가 어디 있으며, 프러포즈 선물로 허리띠를 받은 여자는 세상에서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깔깔’대며 웃곤 한다.

하지만 당시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왜냐하면 멀쩡하게 생긴 총각이 앞도 못 보는 시각장애인에다 애가 둘이나 있는 이혼녀와 함께 살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겨우겨우 빠져나온 깊은 어둠의 늪 속으로, 이제는 그가 자처해 스스로 빠져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은 영화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로맨틱한 일이 절대 아니에요. 때론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도, 동정 어린 말과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몸짓까지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딪히고 상처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바보 같은 생각 집어치우고 정신 차리세요.”

진심으로 거듭 이야기했다. 그러나 이미 결심을 굳힌 그에게 내 말은 마이동풍, 우이독경일 뿐이었다. 급기야 나는 그와 절교를 선언했다. 모든 연락을 끊었다. 그때는 그렇게 하는 것이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는 나를 못 만나게 되자 매일 저녁 내 집 근처 공원에서 하염없이 앉아 있었다고 한다. 때론 눈물이 난다며 내게 편지를 쓰기도 했다. 글씨를 읽을 수도 없는 내게 말이다.

그는 몇 달 동안 자신의 진심을 어떻게 하면 내가 받아들일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장애인 활동 보조인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는 내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전신마비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병원에 다니고 지적장애 학생을 돌보고 시각장애인을 정성스레 돌봤다.

그 사실을 알고 감동이 밀려 왔다. 그의 진심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숨기고 참아왔던 그에 대한 내 사랑을 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는 다시 만났다. 서로 말없이 한참을 끌어안고 흐느꼈다. 그 남자는 중도 실명한 내게 하나님이 보내주신 ‘수호천사’였다.

정리=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