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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지하철역 파괴·특공대 객차 진입… 전쟁터 같았던 홍콩의 주말

홍콩 시위대가 1일 홍콩국제공항 인근 퉁청역 주변 공항으로 통하는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질러 통행을 막고 있다. 시위대는 오후 2시쯤부터 공항으로 진입하는 도로와 철로를 막고 차량과 열차 운행을 방해하며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AP연합뉴스


홍콩 경찰이 1일 홍콩국제공항 인근 퉁청역에 정차한 객차 안으로 들어가 승객들 중 시위 참가자가 있는지를 검문하고 있다. 그간 홍콩 경찰은 안전사고를 우려해 지하철 역사로 도주한 시위대는 쫓지 않았으나 전날부터 최정예 특수부대인 ‘랩터스 특공대’를 지하철 역사 안으로 투입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섰다. AFP연합뉴스


홍콩의 주말은 전쟁터 같았다. 체포와 테러 위협, 홍콩 정부의 집회 금지 조치에 시위대는 더욱 극렬하게 저항했다. 시위대가 1일 홍콩국제공항과 시내를 잇는 도로와 철로를 모두 막아 오후 한때 공항을 오가는 길이 완전히 마비됐고 홍콩에서 출발할 예정이던 20여편의 운항이 취소됐다.

홍콩 시위대는 이날 오후 홍콩국제공항으로 통하는 도로를 차단하고 열차 운행을 저지했다. 시위대는 오후 2시쯤부터 공항 터미널 주차장 등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차량 통행을 막다가 무장 경찰이 진입하자 후퇴했다. 그러나 공항으로 진입하는 도로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쳐 차량 진입을 막았다.

공항으로 향하는 철로에는 철근과 플라스틱 도구, 벽돌 등을 던져 열차 운행을 방해했다. 철로와 도로가 모두 막히자 공항철도를 이용하려던 승객들은 길게 줄을 서서 하염없이 기다렸고, 버스 승객들은 중간에 내려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공항에서 밀려난 시위대는 인근 퉁청역에 집결해 역사 주변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불을 질렀다. 시위대는 근처 건물에 있던 중국 국기를 끌어내려 불태우기도 했다.

시위대가 지나간 뒤 지하철 역사에 있는 티켓 발매기의 액정과 기둥에 달린 TV모니터 등은 완전히 파손돼 있었다. 소방 호스나 소화전도 파손돼 호스에선 물이 쏟아져 나와 역사 내부는 물바다가 됐다. 시위대는 지하철 개표구 덮개를 열고 차단기를 부쉈고, 지하철 내 각종 사무실과 서비스센터 유리창도 깨뜨렸다. 바닥과 벽 곳곳에는 검은색 스프레이로 쓴 구호가 어지럽게 적혀 있었다. 경찰은 오후 5시를 전후해 시위대 해산에 본격적으로 나서 도로에 쌓여 있던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철로 주변에 있던 시위대도 밀어냈다.

홍콩 당국은 이날 오후 7시쯤부터 공항 지하철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경찰에 밀린 시위대는 극히 일부 운행되는 버스의 짐칸에 타거나 20㎞가량을 걸어서 공항 주변을 빠져나오기도 했다. 공항에서 나오는 도로는 걷는 시위대와 승용차, 버스 등이 엉켜 극심한 체증을 빚었다. 앞서 공항으로 들어가는 사람들도 칭마대교부터 걸어서 이동해야 했다.

시위대는 2일에도 공항으로 통하는 주요 교통로를 차단해 공항 기능을 마비시키자고 SNS를 통해 공지했다. 홍콩 시위대는 지난 12일과 13일에도 공항을 점거해 1000편가량의 항공편이 결항하는 ‘항공 대란’이 빚어진 바 있다.

격렬한 시위대만큼이나 경찰도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전날 도심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다시 실탄 경고사격을 했고, 지하철 객차 안까지 경찰 특공대를 투입해 최루액을 뿌리고 곤봉을 휘두르며 시위대를 체포하기도 했다. 시위대와 경찰이 곳곳에서 극한 충돌을 빚으면서 홍콩 사태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홍콩 시위대는 31일에도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이 집회를 전면 불허하자 사전 신고가 필요없는 ‘종교 집회’와 ‘쇼핑 활동’을 내세워 곳곳에서 모여들었다. 홍콩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의 집회가 예정됐던 도심 센트럴 차터가든 공원에는 오후 3시를 넘어가면서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은 2014년 8월 31일 중국이 홍콩 행정장관 간접선거제를 결정한 지 5년째 되는 날이었다.

홍콩섬 동쪽 코즈웨이베이에서는 쇼핑 명목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기독교단체들은 완차이 지역의 체육공원에서 ‘종교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센트럴 지역까지 거리행진을 벌였다. 코즈웨이베이부터 끝없는 행렬이 이어지면서 센트럴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인파로 가득했다.

시민들은 “우리의 자유를 지키자” “자유를 위해 싸우자” “우리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일부 시위대는 빨간 바탕에 17개의 노란 별로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그려넣고 ‘차이나치(ChiNazi·赤納粹)’라고 새긴 깃발을 들고 나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五星紅旗)를 풍자했다.

시위대 행렬 중에는 대형 성조기를 흔드는 젊은이들도 있었고, 영국 깃발도 간간이 보였다. 휠체어를 타고 나온 노인도 눈에 띄었다. 시민들은 최근 시위지도부에 대한 체포와 백색테러에 분노하고 있었다.

퀸즈웨이 플라자에서 만난 레이 리(27)는 “경찰이 아무리 시위 지도부를 잡아가도 소용없을 것”이라며 “지도부는 없고 우리 한 명, 한 명이 모두 지도부다”라고 말했다. 삼 호(22)는 “체포나 백색테러를 하고 인민해방군으로 우리를 위협해서 시위를 막을 수 있다고 보면 착각”이라고 자신했다. 홍콩 매체는 이날 시위에 ‘저항의 날’이란 제목을 달았다.

수많은 시위대가 홍콩 정부청사와 인민해방군 건물 등을 둘러싸고 구호를 외치는 등 시위가 격렬해지자 오후 5시30분쯤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해산에 나섰다. 상공에는 경찰 헬기 2대가 계속 선회했고, 초고성능 카메라로 시위대의 얼굴을 찍는다는 소문도 돌았다. 시위대는 벽돌과 화염병 등을 던지며 저항했다. 경찰은 시위대 식별을 위해 파란 물감을 섞은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다. 경찰에 밀린 시위대는 시내 곳곳으로 흩어져 시위를 이어갔으며, 바리케이트를 치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시위대와 대치하는 과정에서 경찰은 실탄으로 경고사격을 하기도 했다.

경찰은 최정예 특수부대인 ‘랩터스 특공대’를 지하철 객차 안에까지 투입해 시위대 체포에 나섰다. SNS에 유포된 영상에는 경찰이 객차 안에 들어가 곤봉을 휘두르며 최루 스프레이를 뿌리는 모습, 바닥에 주저앉은 젊은이들이 울부짖는 모습 등이 담겼다.

홍콩 시위대가 시설 파괴를 하고 중국 오성홍기를 불태우는 일까지 벌어진 데다 중국 정부가 올인하는 건국 70주년 국경절(10월 1일) 행사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돼 중국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관영 신화통신은 “폭도들이 정부 건물을 파괴하고 대로에 불을 지르고 홍콩을 혼란에 빠뜨렸다”며 “많은 사람들이 폭도들의 본색을 보고 있다”고 비난했다.

홍콩=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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