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세월을 스크린에 남기다

데뷔 이래 5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다층적 매력의 배우 윤정희. 한국영상자료원
 
노년에도 여전한 아름다움과 단단함을 보여준 최근작 ‘시’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순진하면서도 속물적인 매혹의 인물을 연기한 ‘안개’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당당한 욕망의 주체로서의 여성상을 선보인 ‘야행’의 극 중 장면. 한국영상자료원
 
남편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한 모습. 국민일보DB




배우를 기억한다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배우란 영화의 얼굴이기도 하고, 감독의 페르소나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스타이다. 그러다 보니, 200~300편이 넘는 영화를 남긴 배우들을 환기할 때엔 무엇보다 그 이미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수백편의 출연작들 각각의 기억이 아니라 작품을 통해 하나하나 쌓아간 것, 그게 바로 어떤 배우에게 떠오르는 이미지, 인지된 평판의 결과이다. 흥미로운 것은 배우의 이미지가 암묵적 합의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대개 배우의 이미지는 대표작에 의해 완성되기 마련인데, 대표작은 몇 가지 공통의 기준으로 선정된다. 우선은 어떤 배우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작품이다. 신성일의 ‘맨발의 청춘’ 같은 작품 말이다. 이런 작품의 대표성에는 이견이 없다.

다른 기준은 주관적 평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기억에 남는 영화, 즉 다시 보고 싶고 추천해줄 수 있는 ‘좋은 영화’는 확고한 개인의 취향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윤정희는 행복한 배우이다. 우선 그는 명확한 대표작이 떠오르는 배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동년배 배우들 중 가장 오래 활동한 배우이며, 그 대표작이 최근작인 배우이다. 1944년 출생인 배우가 현재적 배우로 논의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이야말로 모든 배우들이 꿈꾸는 삶 아닐까? 데뷔 이후 필모그래피가 끊어지지 않는 배우, 말 그대로 롱런하는 배우 말이다.

최신의 대표작 ‘시’

윤정희 하면 젊은 관객들에게는 이창동 감독의 ‘시’(2010)로 환기될 것이다. 당시 윤정희는 94년 작인 ‘만무방’(엄종선)을 마지막으로 영화계에서 사라진 것처럼 여겨진 배우였다. ‘밀양’(2007)으로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선사한 바 있는 이창동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점에서 ‘시’는 당시 무척 화제가 됐던 작품이다.

무엇보다 추억 속의 스타 윤정희가 주연을 맡았다는 사실이 더욱 화제였다. 300편이 넘는 영화를 남기고 간간이 인터뷰에서나 얼굴을 비추던 그녀가 다시 현역으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영화 포스터에 그녀, 미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돼 있다는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시’는 조금씩 치매로 기억에 손상을 입어가는, 그럼에도 시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기록하고 싶어 하는 미자의 이야기이다.

돌이켜보면 ‘시’는 윤정희라는 배우의 이미지와 중첩돼 떠오르는 작품이다. 꽃처럼 고운 할머니가 손주가 저지른 끔찍한 사건을 접하고, 아름다운 강물 위로 떨어진 더 아름다운 소녀를 떠올릴 때, 그 아이러니 가운데서 시는 완성된다. 아름다웠던 여배우 윤정희를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나이 든 얼굴, 미자 윤정희를 스크린에서 본다는 것은 거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은 놀라움이었으리라.

67년 강대진 감독의 ‘청춘극장’으로 데뷔한 윤정희는 그 등장부터 화제였다. 66년 합동영화주식회사의 신인배우 오디션에서 1200대 1이라는 기록적 경쟁률을 뚫고 발탁됐으니 말이다. 윤정희는 전성기였던 20대에 2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런데 윤정희는 30대, 40대 그리고 50대까지도 꾸준히 주연으로 여러 작품에 등장한다.

이 독특함은 함께 트로이카로 불렸던 다른 여배우들의 궤적과 비교하면 더욱 두드러진다. 윤정희는 66년 데뷔한 동년배의 문희, 남정임과 함께 트로이카 여배우로 호명됐다. 하지만 문희는 73년 ‘씻김불’ 이후로 영화계에서 사라졌고, 남정임 역시 78년 ‘웃음소리’를 끝으로 더 이상 작품에서 볼 수 없었다.

당대 톱스타 여배우들의 삶의 여정은 대개 비슷했다. 20대 시절 폭풍처럼 어마어마한 수의 영화들을 찍고, 대부분 결혼과 함께 스크린을 떠났다. 그러나 윤정희는 30대를 지나고 결혼을 해서도 영화와 결별하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얼굴을 스크린에 박제한 채 신비의 대상으로 사라졌던 다른 여배우들과 달리 윤정희는 세월과 시간의 얼굴을 증언처럼 남겼다. 세월을 입어 변해가는 한 배우, 여자, 인간의 얼굴이 윤정희의 필모그래피 위에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이창동 감독의 ‘시’이다. 배우로서 세월의 흔적과 삶의 자국을 스크린에, 영화사에 남길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축복된 일이다. 현실적으로, 여배우에게는 더욱 그렇다.

다층적 욕망의 문제적 인간의 이미지

윤정희는 다층적인 여배우다. 선배인 최은희가 전통적인 여성상, 동료인 문희가 순종적인 청순가련형 여성, 남정임이 깜찍하고 발랄한 현대 여성 이미지로 각인되었다면 윤정희는 데뷔 초부터 복합적인 이미지로 호소하는 배우였다. 이는 초기작인 김수용 감독의 ‘안개’ 덕이 크다. 데뷔하던 67년, 윤정희는 ‘청춘극장’과 ‘안개’를 동시에 찍는다. 그리고 그해 ‘청춘극장’으로 대종상 여우 신인상을, ‘안개’로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신인상을 받게 된다.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을 원작으로 한 영화 ‘안개’는 세련된 영상과 촬영 기법으로 한국영화사의 중요한 한 장면으로 평가받는 작품 중 하나이다. 무엇보다 매혹적인 것은 “무진은 너무 지겨워, 나를 서울에 데려다줘요”라고 호소하는 ‘하인숙’이라는 희대의 캐릭터였다. 도도하고 세련된 여성이지만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밖에 없는, 자존심에 걸맞은 현재적 삶을 갖지 못해 갈증에 시달리는 여성의 갈등과 모순 그리고 욕망을 윤정희는 고스란히 표현해냈다.

한편 ‘독짓는 늙은이’(최하원·1969)에서 윤정희는 매우 전형적인 시골 아낙이면서 동시에 욕망에 굴하고 마는 입체적 여성, 옥수로 등장한다. 남의 아내를 탐했다는 양심적 갈등을 이기지 못해 옥수를 떠나려는 남자의 뒤에서 옥수는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붙잡거나 가지 말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눈빛으로 호소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만류나 보챔보다도 강렬한 요구로 다가온다. 그 눈빛은 속물적이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욕망의 시선이다.

이런 눈빛의 힘은 김수용 감독의 문제작 ‘야행’(1977)에서 폭발한다. 지금의 관점에서 봐도 논쟁적인 이 작품은 오롯이 윤정희에 집중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은행에서 일하며 직장 동료와 남몰래 동거 중인 여성, 심지어 남자를 적극적으로 유혹해 하룻밤을 보내고 동거남의 청혼에 오히려 곁을 떠나는 현주는 매우 파격적인 여성형으로 받아들여졌다. 무엇보다 현주는 산업화와 도시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아니라 그것을 우습게 내려다보는 당당한 욕망의 주체로 그려져 있다. 53번의 검열을 당한 채 3년이나 창고에서 묵었던 이 작품은 윤정희의 입체적이며 대담한 연기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같은 해 출연한 영화 ‘화려한 외출’(김수용)의 공도희 역시 문제적 인물이다. 중견 사업체의 대표로 등장하는 윤정희는 수많은 남성과 여성을 아랫사람으로 호령한다. 그러던 그녀가 갑자기 어촌 마을로 납치를 당하고, 다른 이름의 여성으로 억지 정체성을 부여받는다. 가까스로 탈출해 돌아온 도시에선 아무도 공도희를 알아보지 못하자 공도희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고층 빌딩에서 투신하고 만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것이 꿈으로 밝혀진다는 사실이다. 마치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몽환적 영화 ‘오픈 유어 아이즈’처럼, 낙하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는 주인공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도전적이다. 그리고 이 실험성의 한가운데에, 대도시의 자본력과 권력을 맘껏 누리는 압도적 여성 공도희, 모두가 다 시골 아낙이라고 말하지만 결코 수긍할 수 없었던 쪽진머리의 여성을 동시에 연기한 배우 윤정희가 있다.

현재성의 모순을 담는 배우

배우 윤정희의 작품은 돌이켜보면 모두 시대의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했다. 범람하는 자본과 욕망, 세련된 이미지로 포장된 개방적 욕망과 여성에 대한 이율배반적 억압 등 윤정희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 속 주인공들은 한 시대의 것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의 넓은 스펙트럼 위에 자아와 욕망을 두고 있다. 지금의 여배우들보다 훨씬 더 과감하고 대담한 연기를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상업적으로 매력적인 이미지에 자신을 한정해 가둔 게 아니라 언제나 믿을 만한 감독의 요구에 응해 새로운 자신을 드러내고자 했던 용기, 그런 용기가 윤정희의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세기의 로맨스라고 불리는 윤정희의 러브 스토리 역시 극적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와의 만남, 비밀의 연애 과정은 어떤 점에서 우리가 배우, 스타에게 투영하던 낭만적 사랑의 기대감과 일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윤정희는 배우라는 자아보다 백건우의 아내로 점차 스크린에서 멀어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정희는 끊임없이 한국영화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80년대 이후에도 ‘자유부인’ ‘저녁에 우는 새’ ‘삐에로와 국화’ ‘위기의 여자’ ‘시로의 섬’에 출연했고, 90년대에도 ‘눈꽃’과 ‘만무방’에 출연했으며 ‘만무방’으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도 다시 대종상에서 공로상이나 특별상이 아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으니, 윤정희는 20대, 30대, 50대, 60대 전 생애에 걸쳐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현역의 배우이다. 불안한 고도성장 시대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욕망의 대상이나 그 주체로 등장해, 정체성 혼란의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던 여배우, 시대의 신경증을 고스란히 보여준 여배우가 바로 윤정희이다.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한영문화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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