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흥호 총장의 성경과 선교] 전도여행 요나, 선민의식 깨고 ‘보편적 사랑’ 깨달아

아세아연합신학대 학생들이 지난 9일부터 태국 선교지를 방문해 봉사 활동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아신대 제공
 
정흥호 아신대 총장


구약성경 곳곳에는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로 오는 자들은 이방인이든 외국인이든 박대하지 말라는 내용이 나온다. 똑같이 이스라엘의 문화에 동화될 것을 기대하며 대우해 주는 것을 볼 수 있다.(레 19:33~34)

그들 민족이 이동함에 따라 주변국에서 영향을 받고 함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무리에 합류하기를 바라는 ‘수동적이고 구심적인 선교’(centripetal mission)였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 구심적이란 말은 신학적 의미와 선교학적 의미를 구분해 말할 수도 있다.

선교학적 의미로 다른 민족들이 이스라엘 민족에 합류돼 독특한 야훼 하나님 신앙에 합류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러나 신학적으로는 구약 전체 역사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그리스도로, 구세주로 오실 사건의 한 구심점을 향해 흘러왔다는 의미에서 구심적이라고 표현한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의 영역을 넘어 선교한다고 하는 것은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요나의 경우처럼 예외적인 일이었으며 어떤 면에서는 하나의 예표가 된다.

요나는 이방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는 소명을 받은 자였다.(욘 1:2) 그러나 그는 잘못된 선입견을 갖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홀히 여겼다.(욘 1:3) 그 소명을 소홀히 여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피해서 도망감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다. 근본적으로 그의 잘못된 신앙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다른 이방인은 구원의 반열에서 떨어진 자로 여겼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편협하고 배타적 태도로 다른 민족을 대했던 것이다.

요나는 이스라엘만이 하나님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특권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자민족 우월주의’(ethnocentrism)에 사로잡혔다. 요나는 나름대로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있었을지 몰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바른 신앙으로 연결됐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은 요나와 같은 인물을 선택하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보여줘야 했으며, 그의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려주셨다.

자신의 신념을 굽히기 어려웠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해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한다. 그는 배 안에서조차 불순종의 행동을 보여줬다. 요나와 다르게 오히려 이교도들이 위험한 풍랑을 대하면서 여호와를 창조주로 알고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고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욘 1:16)

결국, 요나는 물고기 배속을 통해 니느웨로 보내진다. 그 당시 니느웨는 앗시리아의 수도였으며 문화의 중심지였다. 하나님이 없는 그들의 문화 안에는 많은 타락의 모습이 있었다. 그들 나름대로 누려온 전통과 문화가 있었겠지만 죄인 된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문화 안에는 여실히 죄악 된 모습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선포해야 했으며 그들의 잘못을 돌이키게 할 임무를 하나님의 종은 깨달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문화 속에서 사는 자들에게까지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좋은 예를 요나를 통해 말씀하신다. 니느웨는 소위 ‘집단개종’(people movement, 한 부족이나 마을 단위로 한꺼번에 개종하는 전도의 결과)의 특별한 예가 될 것이다. 결국 요나의 선교로 니느웨의 많은 사람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믿게 되었으며, 그들 스스로 금식할 정도로 신앙의 전환이 이뤄졌다.

니느웨에 있는 사람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사람까지도 구속의 기회를 주고 있다. 타락한 자들의 상징처럼 보였던 니느웨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종 요나를 통해 그런 기회를 얻게 됐고, 그들도 하나님의 구원 대상이었음을 보여준 좋은 예가 됐다.

선교적 관점에서 본다면 요나서의 중요한 주제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요나서 4장에서 왜 선교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적이 분명하게 언급돼 있다. 많은 민족 가운데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은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유대주의적 선민의식’에 빠져 있었다. 그 결과 다른 민족들에게 진취적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이었고 자민족중심주의라는 벽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자기들만 누리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민족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선교를 통해 요나가 갖고 있던 잘못된 자기중심적 선입견을 깨트리셨고 민족에 대한 편견을 버리게 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욘 4: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아주신 것은 분명한 사실이나, 그 목적에서는 부르신 자들을 통해 하나님을 알지도, 믿지도 않는 자들에게까지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시려는 구원 목적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선택한 백성을 질투하게 하시며 회개로 끌어내기 위해 요나가 화를 내게 하는 것까지도 사용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회개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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