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은 하나님의 선물] ‘벼랑 끝’ 사람들 기댈 곳 없다… ‘마음의 응급실’ 늘려야





“엄마의 죽음 앞에서 ‘차라리 잘된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23일 경기도 모처에서 만난 A씨(58 여)는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시절 맞닥뜨린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을 이렇게 회고했다. 1981년 당시 20세였던 그는 아버지로부터 어머니가 수면제를 과다 복용해 자살을 시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는 병원으로 향하던 차 안에서 충격과 절망감보다는 ‘이제는 편히 쉬시겠지’란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했다.

A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를 지켜봤다. 그는 수면제 과다 복용을 막기 위해 약을 숨겨가며 어머니의 자살 시도를 막아야 했다. A씨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10여년 동안 수차례 극단적 선택을 하며 쓰러졌다 일어서길 반복했다. 결국 어머니는 수면제를 찾아내 자신의 생을 마감하는 데 썼다.

A씨는 2011년부터 자살자 유가족 모임인 ‘자조 모임’에 참여하며 이들의 정신적 안정을 돕는 전문 상담사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고 같은 상처를 경험한 이들을 도우며 살기까지는 꼬박 30년이 걸렸다. 그동안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으로 인한 슬픔, 어머니를 내버려 둔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냉소, 우울증까지 모두 가슴에 품은 채 살아왔다. 그는 “유가족들은 이미 자살에 노출됐기에 자살에 취약해진다”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으려면 가슴 속 응어리를 꺼내놔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7월 발표한 ‘2017 응급실 기반 자살 시도자 사후관리사업’에 따르면 자살 시도자의 88.9%가 충동적으로 행동했으며 절반이 넘는 52.1%가 자살 시도 전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사회 구조적으로나 사람들의 인식에 있어서 적절한 도움을 주기엔 아직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신성만 한동대 상담심리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우리나라는 자살 전조증상이 나타나기 전 적절한 심리 상담을 받을 기회가 매우 적다”면서 “결국 이들의 심리 상태가 최악에 다다를 때까지 홀로 버티다 관련 기관을 찾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강명수 새중앙상담센터 전문상담사도 “일반적으로 자살 시도자나 유가족을 만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움에 한발 물러서다 보니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거절당했다’는 2차 심리 피해를 입게 된다”고 지적했다. 강 상담사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자살을 사회적 문제가 아닌 개인적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한민국=자살공화국’이란 꼬리표는 여전하다. 중앙자살예방센터(센터장 백종우)가 통계청의 사망원인통계와 경찰청 내부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하루 평균 34.1명이 극단적 선택으로 생명을 잃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발행된 중앙자살예방센터의 ‘국내외 자살 현황 분석’ 자료에도 2017년에만 인구 10만명당 24.3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인구 10만명당 12명(2018년 11월 말 현재)인 것에 비교해 평균 2배 넘는 수치다. 2018년 리투아니아가 OECD에 가입하자마자 1위를 차지하기 전까지 한국은 2003년부터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를 달리고 있었다. 앞선 복지부 자료를 통해 국내 자살 시도 동기를 살펴보면, 정신건강 문제가 31.0%로 가장 많았고 대인관계와 말다툼 문제가 각각 23.0%와 14.1%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나라는 ‘관계 중심 사회’라는 특성이 매우 강해서 주변 사람에게 크게 영향을 받는 경향을 보인다”며 “주변인, 유명인의 극단적 선택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도 그만큼 크다”고 진단했다. 장영진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시민 정서상 정신상담을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이어서 초기 심리치료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을 것”이라며 “인식 전환과 사회적 기반 확충이 절실하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지난 16일에는 3선 국회의원 출신 한 정치인이, 지난달 29일엔 유명 여배우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최근 자살 예방 관련 간담회에서 만난 한 목회자는 기독교인으로 알려진 정치인의 죽음을 두고 “잘 자라던 나무와 같은 한 사람이 도중에 꺾이는 것만큼 하나님 나라에 큰 손실도 없다”며 안타까워했다. 자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교회도 막중한 책임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강 상담사는 “한국교회가 자살에 대한 개념을 조금은 달리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살을 죄로 단정 짓고 무조건 정죄하기보다는, 생명 존중이라는 선한 의도를 먼저 앞세우고 다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살 문제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건 섣부른 조언이 아니라 실질적인 필요와 도움이 무엇인지 살펴줄 주변 이들의 작은 관심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도 “신앙으로 이겨내라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기독교적 관점에서 현대인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자세를 갖고 목회적 돌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우울증약을 먹는 선택지만 있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